1. 변화하는 교육 / AI 시대 자녀교육 바둑이 신의 한 수
2009년부터 2013년까지 EBS에서 ‘공부의 왕도’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국의 최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던 학생들이 특정 과목에 대한 학습 방법이나 자신의 자기 주도 학습 방법을 전해주었습니다. 가령 수학 과목의 경우 이러한 공부 방법이 소개되었죠.
계획하고 분석하라, 수학이 잡힌다!
수학 만점 인과관계로 정복하다
수학! 실수 노트로 만점을 노려라!
3.3.3 공부법으로 수학을 정복하라!
되짚어 풀어라! 그물망 수학 공부법
수학, 핵심과 사고 과정을 서술하라!
한때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짬을 내어 공부의 왕도 영상을 보여주었던 때가 있었어요. 목적은 ‘이런 공부 방법도 있으니 개인적으로 공부할 때 한번 참고하라’는 의미였죠. 게다가 면담할 때도 학습법을 점검하며 공부의 왕도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고 추천해주기도 했습니다.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앞서 이야기했던 3,4 단계의 학습 단계에 대한 중요성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계속 실수하는 구나.’, ‘이런 문제에서 이런 방법을 생각해야하는구나’ 등을 다시 짚어보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였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심드렁합니다. 면담할 때는 열심히 듣는 것 같고, 영상은 재미있게 보지만 큰 변화가 없길래 하루는 평소 면담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인 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오답노트 정리 한 번 해봤니? 어땠어?”
“아, 선생님. 그거 좋은 방법이라는 건 알겠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하고는 안 맞아요.”
“왜? 좋은 방법이라면서?”
“에이, 그거 상위권 애들에게 잘 먹히죠. 걔네들이야 몇 문제만 정리하면 되니까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저같은 아이들은 정리하는데 3박 4일이에요. 언제 그거 다 정리해요?”
“어..그렇구나..”
“보면서 이런 공부에는 이런 장점이 있고, 저런 공부에 저런 장점이 있다는 거를 알게 된 건 좋았어요. 하지만 이런저런 공부 방법을 시도하고 적응하기에는 지금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냥 하던 방법대로 하게 되더라고요. 입시가 가까운 시기에는 하던대로 해서 실패를 줄이는게 새로운 시도보다 효과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다고 그 프로그램 영상을 보며 많은 느낌이 들었어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저절로 되는 건 아니구나.. 어떻게 공부를 잘 못하는 나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 이런 생각도 들었거든요.”
면담이 끝나고 학생을 보내고 혼자 책상에 앉아 멍타임을 좀 가졌습니다. 생각해보니 EBS의 공부의 왕도에 나오는 아이들은 전국 최상위권인 학생들이었고, 그들의 공부 방법은 또 각자 다양한 특성에 맞는 스타일들이 있습니다. 물론 각 방법들이 좋은 방법들이지만 모든 수준의 학생들에게 적절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순간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손흥민 선수의 훈련 방법이 모든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같은 방법일까요? 세상에 가장 좋은 공부법이나 훈련 방법이 존재한다면 앞서 살펴봤던 비고츠키의 이론을 비롯해 수많은 교육학의 다양한 이론이 나오지 않았겠죠. 학교나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정말 단 한 명도 같은 아이들이 없습니다. 장단점도 다르고 특기, 관심사, 학습 동기 등에서 같은 아이들이 없죠.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면서 이 학생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지, 어떤 관심사가 있으며 어떤 점에서 동기 부여가 되는지 등을 계속 살펴보며 관찰하게 됩니다.
사실 무엇인가를 배워가고 익히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정은혜 작가는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책에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치원때까지 그리기를 무척 즐거워하고, 자신이 그린 작품을 집으로 즐겁게 가지고 오죠. 그토록 예술가들이 도달하려고 하는 ‘망설임 없음’의 경지에서 시작하는 예술의 활동은 어느 순간 미술이라는 과목의 점수, 비교의 문화와 접하게 되면서 자신이 그렸던 그림이 잘 그린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그리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시기에 미술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30대 여성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면서 자신이 창조적이지 않다고 느꼈고, 그 때부터 미술에 흥미를 잃었다는 일화도 소개됩니다.
미술 뿐일까요? 다른 분야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합니다. 아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좌절감과 고통을 주는 과목은 수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기도 합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세기를 배울 때 흔히
“여기 사과가 몇 개 있어?”
“하나, 둘, 셋. 세 개가 있어.”
“세 개면 숫자로 뭐라고 하더라?”
“삼이야. 3”
“아유~ 잘했어!”
라고 하면서 칭찬을 받은 행복한 추억이 있죠.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에 대해 능숙함과 정확함에 대한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좌절을 경험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할 수 있다는 것은 칭찬이 되지 않고, 또래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합니다. 정답 외에는 다른 평가는 없죠.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은 틀렸다는 것과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평가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괄적인 평가와 달리 학교나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너무나 쉽게 암기를 잘하는 친구들이 있고, 복잡한 개념들을 잘 사고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계산을 기가 막히게 빨리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빨리 찾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번득임이 없지만 오래 앉아서 공부를 하는 끈기와 체력이 뛰어난 친구들도 있죠. 아이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공통적으로 어렸을 때 이러한 학습 능력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경험들이 가지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A라는 학생은 남들보다 계산이 무척 빠릅니다. 가정 학습지를 통해 계산을 남들보다 요만큼 더 빨리했는데 그게 자신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해요.
Dweck의 목표 지향성 이론에 따르면 학습 동기에는 스스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개발하는 것에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숙달 목표가 있고, 타인과 비교해서 능력과 성과를 입증하려는 수행 목표가 있습니다. A 학생의 경우 계산을 남들보다 빨리 끝냈다는 사실이 큰 보상이 되었기 때문에 수행 목표가 학습 동기에 큰 역할을 했던 모양입니다. 반면 어떤 친구들은 수업이나 면담에서 뭔가 하나씩 배워갈 때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하는 감탄사를 보이며 하나씩 배워가는 것에 반응을 잘 보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친구들은 어렸을 때 책 읽기를 좋아하거나 TV 교양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에서 뭔가를 알아가는 활동에 관심이 많은 특징이 있습니다. 수행 목표보다는 뭔가 배워가는 숙달 목표에 의한 동기 부여가 잘 되는 편입니다.
숙달 목표는 배우는 그 자체에 큰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공유되는 수많은 ‘황금레시피’를 활용해 요리를 완성해본 경험이 대표적입니다. 레시피를 따라해보면서 만들어본 요리가 생각보다 맛있었을 때 “와, 이걸 내가 했다고?” 라면서 매우 즐거워하는 경험이 있을꺼에요. 그 때는 내가 남들보다 빨리 만들었다거나, 예쁘게 접시에 담았다거나, 정확한 계측을 통해 재료를 사용했다는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하나, 둘 쌓이면 요리에 재미가 생겨나고 점차적으로 동기가 부여되니까요.
수행 목표도 좋지만 우리 아이들은 학습에서 숙달 목표를 성취함으로써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경험이 학교나 다른 학습 경험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독서에 즐거움을 느끼면 ‘이 책은 참 재미있었어. 그럼 저 책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배움과 학습에서 즐거움을 한 번 경험하면 다른 것들을 배울 때 좀 더 쉽게 동기부여가 됩니다. 또한 학습에서 단순히 맞췄다, 틀렸다는 이면적인 평가가 아니라 ‘그것도 좋은 답일 수 있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인정을 더 많이 받는 것도 좋겠죠. 마치 어떠한 식재료를 가지고 수많은 다양한 요리가 있고, 각 요리마다 여러 레시피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 교과를 학습하는 방법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 '[1.8]공부에 왕도는 없어도 좋은 도로는 깔자' 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