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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 따뜻한 대화가 곁들여진 토요일 디너

by 이확위

평일이 지칠 때면, 주말에 무언가를 계획해 두는 편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 새로움으로 나는 가보지 않았던 식당을 찾곤 한다. 지난 주말에도 어차피 외출할 일정이 두어 개 있었기에- 그 후에 저녁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자 생각했다. 갈만한 식당을 찾아본다. 언제나와 같이 식당을 정하는 기준은 단순하고 한결같다.

1. 평점이 높은 곳

2. 리뷰 중 불만이 있는 경우, 내 기준에 별일이 아니라면 ok-

3. 메뉴가 흥미로울 것

4. 음식 사진이 먹음직스럽게 보일 것

이러한 기준으로 홍대부근의 한 곳을 예약했다. 후기가 200여 개인데 평점이 5.0이었다. 그리고 먹고 싶은 메뉴들도 제법 있었다.


토요일 저녁 다른 일정들을 마치고는 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아주 작았다. 홍대의 번잡한 중심부에서는 조금 벗어나 홍대와 망원의 중간쯤, 조금은 한적한 길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식당은 오픈 주방을 둘러싼 바에만 좌석이 준비되어 있는 형태였다. 자리를 고를 수 있기에 조금더 한적한 안쪽으로 향했다. 안쪽 자리에, 한 사람 예약이 더 있다며 내 옆쪽에 자리를 비워두게 하더라. 두 명이 요리를 하고, 한 분은 손님 응대를 하는 모양새였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살핀다. 앗. 인터넷에서 보고는 '이거 먹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메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시즌마다 메뉴가 바뀌는 건지, 완전히 다른 메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꽤나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앙트레와 메인으로 하나, 하나 주문하고 싶어 이런저런 조합을 골라보았다. 그러다 결정하기 어렵기에 식당 직원분에게 의견을 물었다.

조합 1: 카포나라(이태리식 채소 볶음이라더라) / 부라타치즈+양고기 스테이크, 샐러드, 메쉬드포테이토
조합 2: 부시리 뱃살, 귤, 셀러리/ 오늘의 생선 (도미랬나, 대구랬나...ㄷ생선이었다.)


조합 1로 가면 글라스로 레드와인을 곁들일 거고, 조합 2는 화이트를 곁들일 거라고 말하며- 어느 걸 더 추천하느냐고 물었다.

식당 사람이 보고는 말했다.

"완전히 다른 조합이네요. 둘이 너무 달라서..."

그러면서 그분도 나처럼 한참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각각의 장점에 대해서 말하는데 부시리 뱃살이 이 날까지는 하는 메뉴인데, 꽤 잘 나와서 인기가 좋았다 말하더라.

오늘 까지란 말에 바로 조합 2를 주문하기로 했다. 부시리 뱃살과 오늘의 생선, 그리고 글라스 화이트와인!



글라스 화이트와인:16,000원

프랑스에서도 지내면서 와인을 기회가 되면 맛보았지만, 여전히 와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일단 먹어보고, '음 맛있네', '아 좀 별로인데.'라고 느낄 분, 왜 좋은지-왜 별로인지를 설명하는 법을 여전히 모르겠다. 와인은 어렵다...

와인을 먼저 따라줬기에 와인을 조금씩 마시며, 가게를 둘러본다. 식당의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주방이 예뻤다. 곳곳에 그림을 붙여두거나, 식물을 장식해 뒀는데- 편안하면서도 자유로운, 어딘가 싱그러운 느낌이 있는 주방이었다. 주방을 찍어서 언니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이런 주방 갖고 싶어.






부시리 뱃살, 귤, 셀러리 _ Amberjack belly, mandarin, celery :16,000원

음식이 나왔다. 꽤나 예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귤이 노랗게 자리 잡아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잿방어는 새끼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꽤나 큼직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셀러리는 잎만 크게 뜯어 얹었나 싶었는데, 뒤적여보니 아래 소스에 아주 작게 셀러리가 다져져 있었다. 다진 셀러리와 올리브오일이 듬뿍 뿌려져 있었다. 살짝 매운 소스가 뿌려져 있어서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귤이 오렌지처럼 단맛은 없기에 오히려 적당한 그 느낌이 좋았다. 잿방어만 씹으면 다소 기름진 생선회의 맛이 나는데, 셀러리 향이 얹어지면서- 약간의 은은한 단맛을 귤이 건넨다. 하지만 어딘가 살짝 단조로운 느낌이 들었다. 아주 약간의 터치가 무언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라임이나 레몬제스트로 향을 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전문가가 아니니, 나의 생각이 정답일지는 알 수 없었다.


잿방어를 먹고 있을 때쯤, 옆 자리 손님이 왔다. 외국인이었다. 가게 사람들과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하더라. '외국인이 단골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정말이지 예전보다 외국인들이 많다. 버스를 타도 거의 언제나 외국인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잿방어를 먹는데,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나에게 영어 괜찮냐고 묻더라. 그래서, 뭐 그럭저럭 한다고 대답하니-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그는 모로코에서 왔다고 했다. 모로코라는 말에

"어? 그럼 프랑스어 하겠네?"

"어 그렇지. 너도 프랑스어해?"

"아니, 난 프랑스에서 2년 반을 살다왔는데, 거의 못해. 아주 기초만"

그러면서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계속 대화를 나눴다.

내 프랑스 친구의 남편이 모로코 사람이라서, 그 집에서 "진짜" 쿠스쿠스를 맛보았던 일이나, 타진을 맛보았던 얘기나. 모로코와 모나코를 착각해서 F1유명하지 않아?라는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프로듀서라 해서 음악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오아시스 공연을 간다는 얘기에, "오아시스 공연이 있다고? 언제?"라는 그에게 티켓 구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오늘의 생선- 도미구이, 새우구이, 비스퀴소스, 피클: 30,000원


생선이 꽤 오래 걸렸는데, 옆자리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에 지루함이 없었다. 그는 삭슈카와 구운 포카치아를 시켰다고 했다. 삭슈카가 모나코 요리라면서 말이다. 그의 요리가 나와, 어떻냐고 했다. 샥슈카인데 계란이 위에 얹어진 게 아니라 소스 아래 잠겨있기에, 보통 위에 얹지 않냐 말했더니. 이 식당의 단골인 그는- 저 셰프가 자기 스타일로 변형한 듯하다 말했다. 하지만 맛은 진자 샥슈카의 맛이라더라.

내 생선 요리가 나오고, 그도 이 생선을 시켰다며 내게 어떠냐 물었다. 두툼한 생선이 큼직하게 구워지고, 생선아래 구운 애호박이 깔려있고, 위에 구운 새우, 참나물, 얇게 썬 피클이 얹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주황빛의 소스가 있었는데 맛을 보니 비스퀴 소스였다. 갑각류의 달짝지근하고 진한 맛이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껍질을 까서 구워진 새우가 있는 걸 보면, 이 새우의 껍질과 머리를 이용해 만든 소스가 아닐까 싶었다. 담백하게 구워낸 생선에 비스퀴 소스가 곁들여진 것은 처음이었다. 생선의 섬세한 맛을 비스퀴소스가 진하게 다 눌러버리기에, 생선을 먹어도 마치 부드러운 새우를 먹는 듯한 느낌이어서, 이 조합이 맞나? 싶었다. 생선과 소스에, 얇은 피클이 곁들여지면 조금은 새콤한 맛이 가해져서 그 묵직한 소스의 맛을 조금 덜어내 주었다.


옆 자리의 모로코 사람에게 비스퀴 소스인데 생선과 이 소스가 함께인 게 낯설 다했더니- 모로코에서는 이런 조합도 자주 먹어서 자신은 익숙하다 말했다. 보통은 하얀 소스들이 더 많긴 하지-라며 말했다.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 보니, 즐거웠다. 혼자 먹어도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지만, 즐거운 대화가 곁들여질 때는 모든 게 한층 더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대화도 계속 이어지고, 디저트 메뉴에도 좋아하는 맛이 있기에 디저트를 주문했다.



초콜릿 무스 & 솔티드 캐러멜_Chocolate mousse, salted caramel: 10,000원


나는 솔티드 캐러멜을 좋아한다. 하지만 초콜릿 무스에 솔티드 캐러멜을 얹으니 서로의 맛을 죽이는 느낌이었다. 솔티드 캐러멜은 초코보다는 바닐라가 더 좋은 듯했다. 초콜릿에 솔티드 캐러멜이 얹어지니 어딘가 시나몬스러운 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쁜 건 아니지만, 베스트도 아니었다.

대화를 마치며 서로의 SNS 계정을 나누고- 서울에서 진짜 모로코 맛이 나는 식당이 있다며, 모로코 식당에 갈 때 같이 가자는 인사를 흔쾌히 수락하며 식당을 나섰다.


식당 자체의 따스한 분위기가 좋았지만, 우연히 만난 옆 테이블의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가 보다 더 따뜻했던 식사였다.


Ripper 리퍼_서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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