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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냉면이 아깝지가 않아 (1/2)

by 이확위

언젠가부터 냉면값이 점점 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6,000-7,000 원하던 것들이 요즘에는 기본이 만원은 하는 듯하다. 내가 말한 냉면은 함흥냉면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요즘 어딘가 흔하게 널려있는 조미료 가득 냉면을 말하는 거다. 진짜라기보다 대충 만든 냉면말이다. 그나마 몇몇 곳은 아직은 면을 직접 뽑아서 냉면을 만드는데 그런 곳은 12,000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보통의 냉면보다도 비싼 냉면계의 고급라인으로 "평양냉면"이 있다. 보통 기본가가 거의 15천 원은 하니 말이다.


사실 나는 평양냉면의 경험이 많지 않다. 기껏해야 두세 번 먹어본 게 전부였고, 처음에는 정말이지 "걸레 빤 맛"같이 느껴졌다. 뭔가 짠맛만 느껴지고 무슨 맛인지 몰랐다. 그 후에는 식초와 겨자를 넣으며 조금 "맛"을 내서 먹으며 어찌저찌 먹었다. 그런게 먹으며 '이게 무슨 맛이지?'하던 어느 순간, 그 "심심한 맛"이 맛으로 느껴지더라. 그게 어쩐지 좋더라.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곳곳을 다니는 것을 보고는 궁금했다. 각자 자기 취향의 평양냉면집이 있다기에 궁금했다. 가게마다 그렇게 다른가하고 말이다. 그런 궁금증에서 이번 여름에 나는 작은 나만의 챌린지를 시작했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그건 바로 서울 평양냉면집 10곳 가보기-였다.



첫 번째 평양냉면 집 (실패)

6월 중순쯤, 올여름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먹으러 나섰다.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은 조금 느지막한 시간으로 토요일 두시 경에 찾았다. 날씨가 조금 더웠기에 사람이 좀 있으려나 했으나... 내가 평양냉면의 인기를 너무 무시했던 모양이다. 처음 찾아간 곳은 식당 앞에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들어가는데, 점심 영엽 손님줄이 마감이었다. 거의 100명은 줄을 서있는 것 같았다. 땡볕에 어떤 그늘막도 없이 그냥 사람들이 서있었다. 손님이 이렇게 매번 기다리는 걸 안다면, 무언가를 준비할 법도 한데 말이다.


두 번째 평양냉면 집 -평양냉면 (물) 16,000원

그렇게 첫 번째 가게는 저녁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포기했다. 20여분 걸어가면 또 다른 유명 평양냉면집이 있었다. 골목에 있었는데, 골목에 다가갈수록 어째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다 냉면집 앞에 사람들이 한가득 앉아 있었다. 다행히도 식당입구에 웨이팅을 입력할 수 있게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1명이라고 내 휴대폰 번호와 함께 입력하고는, 근처 카페에 가서 기다렸다. 카페에서 다른 것들을 하며 기다릴 수 있어 좋았다. 10명쯤 남았을 때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의 불고기도 맛있다고 해서, 혼자지만 불고기와 냉면을 모두 즐길까 하는 마음으로 메뉴판을 보았다. 가격을 보고는 그냥 메뉴판을 덮었다. 조금 더 성공하고 불고기를 먹으러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테이블에는 따뜻한 면수가 담긴 주전자, 배추김치 같은 것이 깔렸다. 그런 후 냉면이 나왔다. 냉면에는 배가 듬뿍 채 썰어 올라가져 있었고. 냉면 육수는 맑은 보리차색을 하고 있었다.

면수는 면 삶을 때 나는 전분물의 맛이 났다. 굳이 이걸 먹어야 하나 싶은 느낌이었다.

냉면의 육수를 맛본다. 육향이 어마어마하게 진하다. 육향이 나에게는 과할 정도로 진해서 고기맛에 짜게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염도가 있는 국물이기도 했다. 면은 쫄깃한데 메밀의 맛이 크게 느껴지진 못했다. 육수의 육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얹어진 고기는 꽤 두꺼웠는데, 차가워서인지 딱히 부드럽지 않고 제법 씹어야 했다. 고기 또한 육향이 매우 진했다. 무절임은 식감이 좀 물커덩한 느낌이었다. 나는 조금 더 아삭한 게 좋은데 말이다. 같이 나온 겉절이 같은 배추김치가 특이했다. 어딘가 참기름을 넣은 듯했다.

육향이 굉장히 진하게 나는데, 기름지지 않은 국물이 신기했다. 이 정도로 끓이려면 굉장히 많은 고기로 육수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후 기름 제거에도 굉장히 애썼어야겠다 싶었다. 내가 만들 수 없는 육수라 생각했다. 이 육수자체가 이 식당의 기술이겠거니 싶었다.



세 번째 평양냉면 집 - 냉면 (15,000원)+편육 돼지고기 200 g (30,000원)


평양냉면을 늦은 점심에 먹고, 다른 곳의 평양냉면 맛이 궁금해서- 근처의 또 다른 평양냉면 맛집을 찾았다. 그런 후, 그 가게의 근처 카페에서 저녁타임 오픈 전까지 할 일을 하며 기다렸다. 그런 후, 식당을 찾아갔다. 이곳은 평양냉면으로 새로 건물을 지은 가게였다. 건물을 짓느라 한동안 장사를 못하다가 올 초쯤 다시 영업을 시작한 평양냉면계의 왕자님이라 했다.


저녁타임 오픈런으로 줄을 섰는데, 내 바로 뒤에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얼마 만에 오는지 모르겠다고 다시 먹을 생각에 너무 기대된다며 들떠있었다. 그 설렘이 나에게도 전염되듯, 나 또한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기다렸다. 사람은 역시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사회적 동물인 거다.

냉면만 먹자니 단백질이 너무 부족해서, 다른 고기 메뉴를 살펴봤다. 소고기 수육과 돼지고기 편육이 있어서, 반반이 된다고 언뜻 들어서 물어보니 안된다기에, 돼지를 골랐다. 소고기 수육이 35천 원, 돼지고기 편육이 3만 원인데 편육 평이 꽤 좋았던 걸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편육에 빨간 양념의 소스가 함께 나왔다. 소스가 상당히 상큼한 맛이라 고기를 찍어먹기 좋았다. 고기는 차가운 편육인데 돼지 잡내가 하나도 없게 아주 잘 삶아져 있었다. 딱히 크게 우와 부드럽다 이런 건 아니지만, 차가움에도 이렇게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게 신기했다. 또한 잡내가 하나도 없이 정말 깔끔하게- 말 그대로 "잘 삶아진 돼지고기"였다. 이런 깔끔하게 익혀낸 것이 바로 이곳의 비법인 거겠지. 그게 돼지고기를 3만 원에 팔 수 있는 능력이겠지.

나박김치 같은 약간 고춧가루가 들어간 백김치가 있고, 무절임은 이전 가게보다 더 새콤달콤한 맛의 무절임이었다. 따뜻한 면수는 숭늉 같은 맛이었다.


평양냉면이 나왔다. 국물을 맛본다. 육향이 나는데 이전 가게처럼 진하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부담 없는 이 국물이 좋았다. 면은 더 얆았고, 보다 더 탱글거리는 식감이었다. 이전 가게는 육수의 육향이 워낙 진해서 면에 그 육향이 따라 올라왔는데, 이곳은 면을 먹을 따라오는 육수의 향이 그렇게 진하진 않았다. 그래서 면 자체를 즐기긴에 더 좋았다. 얇은 면이 아주 부드럽게 넘어갔다. 면이 얇아서 그런지 양이 굉장히 많았다. 면의 탱글함이 마치, 부산에서 먹었던 밀면을 떠올리게 했다.

얹어진 계란이 살짝 오버 쿡되어 주변에 변색이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매일 삶는 계란인데, 제 시간을 맞춰 삶지 않는다는 게 어쩐지 "대충"이란 느낌을 줘서 실망스러웠다. 고기는 1mm 정도로 아주 얇은 소고기가 하나 올라가 있었다. 얇아서 그런지, 바로 이전 가게보다는 부드럽게 씹혔다. 냉면에 돼지고기 편육도 올라가 있는데 이건 조금 더 두꺼운 2mm 정도의 두께였다. 고명에 파 썬 것과 깨가 조금씩 얹어있는데 개인적으로 파의 향을 좀 강하게 느끼는 편이라, 파가 필요한지는 잘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간간히 씹히는 깨의 고소함은 좋았다.

어느 정도 먹다가 식초와 겨자를 조금씩 넣었다. 나는 이렇게 넣는 것이 더 좋다. 누군가는 오리지널로 즐겨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맛있게 먹는 게 좋다. 적당한 육향에 겨자와 식초가 어우러지면서 한 층 더 부담 없이 먹혔다. 이전 가게보다 이곳은 어쩐지 조금 더 "젊은" 맛으로 느껴졌다.


점심, 저녁으로 모두 평양냉면을 먹어, 냉면으로 가득 차 버린 주말이었다. 같은 이름을 하고 있지만 두 곳의 맛이 너무나도 다른 게 재밌었다. 서로의 맛을 비교하며, 그 안에서 내 취향은 어디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평양냉면이 너무 비싸다며, 가격이 거품이라고들 한다. 내게 식당에서 돈을 내고 아깝다/아깝지 않다의 기준은 [내가 만들 수 있는가]이다. 하지만 평양냉면집에서 냉면을 맛보면 맛볼수록, 나는 내가 이 국물들을 만들 자신이 없다. 평양냉면의 그 육수들이 쉬이 얻어지는 게 절대 아닌 것 같았다. 육향을 가두지만 기름은 제거하여 진하지만 깔끔한 이 맛은- 간단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 나는 그런 그들의 노력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는 거다.


나는 평양냉면을 사 먹는 게 아깝지가 않다.


***(평양냉면 챌린지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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