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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역국에 왜 열무김치를 줘요

by 이확위

미역국을 좋아한다. 외국인들이 어쩌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뭐야?"라고 물으면 나는 "미역국"이라 답한다. 미역국은 나의 comfort food, soul food이다.


내 인생에서 40kg대의 무게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딱히 다이어트를 애써 한 건 아니었고- 그저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많아서,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 운동이 재밌어서, 킥복싱에 달리기까지 추가로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이제 막 출산한 언니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었는데- 그때, 산후조리용으로 언니가 먹는 사골미역국을 옆에서 먹다가 입맛이 터졌다. 사골미역국을 아무리 먹어도 언니는 모유수유를 하고 육아가 힘들어 살이 쭉쭉 빠졌지만, 나는 점점 건강해졌던 기억이 있다.


나는 소고기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는데, 소고기 미역국에서 소고기를 좋아하진 않는다. 어릴 적부터 국에 들어있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육수를 위해 자신의 맛있는 성분을 모두 뱉어내고 남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어쩐지 물속에 빠진 고기는 먹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뼈에 붙어있는 것은 그래도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살코기는 영 손이 안 간다. 그래서 어릴 적에도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시면, 그릇에 고기만 남기고 다 먹곤 했다. 엄마는 단백질도 먹으라며 잔소리를 하셨지만, 난 먹기 싫은 건 먹지 않았다. 육수를 내는데 사용된 고기만 아니라면 다른 고기는 먹었으니 이런 사소한 편식은 영양적으로 문제 될 일도 없었다.


미역국에서 좋아하는 건, 부들부들한 미역이다. 그래서 난 집에서 미역국이 먹고 싶으면 언제나 하루 전날 끓여두고- 다음날 데워먹길 더 좋아한다. 빳빳한 미역의 미역국은 영 맛이 없다. 부들부들한 미역과 고기육수의 적당한 기름기에 참기름의 은은한 향이 한데 어우러져 부드럽게 입안에 들어오는 게 좋다. 어쩌다 고기가 입안에 들어오면 마지못해 먹지만, 부드러운 미역과 함께 국물을 맛볼때, 고기는 나에겐 그저 방해꾼 같을 뿐이다.


미역국에는 잘 익은 김치를 곁들이길 좋아한다. 무김치 종류도 좋고, 배추김치도 좋다. 미역국의 고기육수와 바다의 해초류가 만난 그 미묘하게 진하지만 묵직하지는 않은 그 국물에, 살짝 신맛이 돌며 잘 익어 시원한 김치가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준다.


밥은 무조건 백미이다. 최근에 잡곡밥, 그것도 렌틸콩을 넣어 밥을 한동안 해 먹었다.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미역국의 국물을 가장 잘 살리는 건, 흰쌀밥이라 생각한다. 미역국의 맛을 해치는 밥으로는 미역국과 상을 차리지 않는다. 나만의 고집이다.


어제 저녁 퇴근이 늦어져 캠퍼스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뎅만 들어간 우동이 있었고, 모듬 깐풍강정이라고 고기튀김, 만두튀김, 김말이 튀김이 깐풍소스에 버무려져 있었다. 호박맛살 볶음으로 호박이 흐물흐물할 정도로 오버쿡되어 볶아져 있었고, 고추장아찌를 새빨갛게 무쳐내 함께 내주었다. 그리고 배추김치가 있었다. 배추김치를 먹으니, 아주 잘 익어있었다. 어째서인지- 이곳에서는 매번 완전히 내 입맛에는 잘 익은 김치보다는 살짝 풋풋한 김치만을 주곤 했었기에, 오래간만에 잘 익은 배추김치가 반가웠다.


이날 저녁 메뉴를 확인하다가 다음날 점심에 미역국이 있는 것을 봤었다. 그래서, '아 내일 미역국에 배추김치 먹으면 되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곤 오늘 점심 미역국을 먹으러 다시 식당을 찾았다. 앗, 그런데 웬걸. 배추김치가 아닌 열무김치가 있는 게 아닌가. 메뉴에 열무김치가 적혀있었지만, 아래 적혀있어서 미역국까지만 보고 미처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밥은 잡곡밥이었다. 자주 잡곡밥으로 내주지만, 애초에 딱히 잡곡을 많이 섞지 않아서- 흑미 살짝 색만 내준 거의 백미에 가깝기에 밥에는 불만이 없었다. 반찬은 닭가슴살 탕수육, 어묵잡채, 건새우마늘종 볶음, 그리고... 열무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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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뭐 반찬이니 그렇다 치지만, 미역국을 주면서 열무김치를 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중에서 김치의 조합이 가장 중요한 건 국이 아닌가.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다른 반찬들을 먹으며 열무김치를 먹으니 제법 잘 익어서 먹었지만, 미역국을 먹다 열무김치를 하나 먹으니- 미역국도 열무김치도 모두 서로의 맛을 방해하기에 곁들일 수가 없었다.


미역국에 열무김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다. 단지 낯선 조합이다-가 아니라, 맛으로 생각해 봐도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미역국은 부드럽고 미끈한 질감, 고기 국물의 감칠맛에 해조류의 감칠맛이 더해진 따뜻한 국물이다. 그런데 열무김치는 어떠한가. 모든 김치가 차갑기는 하지만, 열무김치는 맛자체가 차갑게 느껴지는 맛이 아닌가. 차갑고, 아무리 익어도 특유의 풋풋한 향이 있어서- 어울리지가 않는다. 열무김치는 익어도 배추김치나 무김치가 주는 산미가 함께 오지 않는다.


친구에게 말했다. 미역국인데 열무김치가 나왔다고. 전날에는 잘 익은 배추김치가 있었다고. 친구는 자신은 잘 익기만 하면 둘 다 좋다고 했다.


혹시 나만 미역국이 나오는데 열무김치인 게 영 못마땅한 걸까... 그래서 이런 조합이 메뉴로 나오는 걸까. 열무김치를 보고 너무도 속상했던 마음을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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