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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빨리 쓴다

by 이확위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서 사람들과 만나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남들의 2.5배 정도의 분량을 써 내려간다. 물론 그 글이 2.5배만큼 좋은 것은 아니다.


최근의 모임에서 20분씩 세 번의 글쓰기 후에 50분 긴 글쓰기를 할 예정이었다. 20분 안에 글쓰기를 했지만 15분 만에 한 편을 쓰고는, 그 후 깨작깨작 글을 조금씩 고쳐보았다. 퇴고의 경험이 많지 않고 매번 글을 뱉어내기만 하기에 내 글의 완성도는 언제나 높지 않다. 윈도 타자게임을 하며 자라난 세대이기에, 생각하는 속도대로 타자를 칠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어-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가는데 거침이 없는 편이다.


20분 동안 한 편을 쓰고, 그 후 20분 동안 또 한 편을 썼다. 맞춰둔 알람이 울렸지만, 다른 분이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다며- 시간을 조금 더 가져도 되겠느냐 했다. 그러시라 하고는 기다리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시더라. 더 이상 뭘 고쳐야 할지 몰라서, 짧은 글 한편을 10분간 써 내려갔다. 그런 후에도 시간이 남기에 또다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짧은 글을 한 편을 더 썼다. 그러니 20분, 20분, 10분, 10분으로 60분 동안 4편의 글-A4로 3페이지의 글을 적었다. 쓰라면 더 쓸 수 있지만, 자제하며 멈추었다.


사람들과 만나기 전에는 내가 빨리 쓴다는 것을 몰랐다. 사람들이 "되게 빨리 쓰시네요."라는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적은 분량과 내가 적어낸 것의 길이를 보면서 조금씩 깨달은 셈이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서일까? 빠르게 써 내려가는 내가 마치 문제가 있는 것만 같다. 남들은 나보다 더 고민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써 내려가는 걸까? 나는 너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그냥 뱉어내는 것은 아닐까?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는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할 수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글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하질 못 하겠다. 내 글이 맘에 드는 건 분명 아닌데, 대체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저 빠르게 뱉어내기만 하는 글에서, 조금 더 깊이 있는 생각을 담고 싶다. 빠르기가 나의 장점이지만, 어쩐지 깊이 있는 작품을 위해서는 한 단어마다 조금 더 머무르며 천천히 가야 하지 않을까.



15분간 쓰고+5분 퇴고>

내가 감히 다빈치를 닮았을까

최근에 나는 내가 조금은 다빈치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하나인, 바로 그 레오나르도 다빈치말이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모나리자부터 각종 발명품들과 함께 그의 뛰어난 작품들이 인류의 유산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은 다빈치에게는 미완성작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다양한 곳에 관심이 많아, 한 가지를 미처 끝내기도 전에 다른 곳에 관심이 팔려 미처 끝내지 못한 것들이 많다고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이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내가 zero, 무(無)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만을 창의력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패션에서도 새로운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와 만들어진 옷을 매치하여 스타일을 완성하는 스타일리스트는 다르지 않은가. 나는 디자이너보다 스타일리스트와 같은 느낌으로 기존의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나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더라.

올해 들어 컨디션이 좋은 나날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각종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연구에 있어서, 논문 하나만 봐도 파생되는 관련 연구들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터져 나와- 아이디어들만을 정리하는데도 버거울 정도였다. 글쓰기는 어떤가, 글쓰기에서도 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모두 쓸 수가 없어, 쓰고 싶은, 써야 할 글들이라 적어둔 리스트도 이제는 거의 50개는 될 거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은 어떠한가,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적어둔 것들도 한 가득이다

연구를 하면서도, 취미로 글을 쓰면서도- 생각만 해내고 완성을 잘하지 못할 것 같아 겁나기도 한다. 글쓰기라면 크게 상관없는 없지만. 연구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완성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계에 위협이 될만한 일이다. 그럴 때면 다빈치의 위대한 작품들이 조금 위안이 된다. 그렇게 다양한 관심사의 다빈치도, 완성작을 내보였으니까. 창의력 과잉상태에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떠올리며 (모나리자의 눈썹이 없는 것도 의도된 완성이라면), 나도 이제는 조금 더 집중하여 결과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절대 다빈치만큼의 결과는 낼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다빈치를 닮았다면- ‘미완성작이 많다’를 닮는 게 아니라, ‘몇몇 훌륭한 완성작들을 남겼다’를 닮고 싶다.


15분간 쓰고+5분 퇴고>

식은 커피와 4.8점

아침에 눈을 뜬다. 일찍 일어나려 했건만, 어쩐지 월요일 학회에서 돌아온 후- 생활 리듬이 정말 깨져버린 느낌이다. 창밖에서 아침 햇살이 느껴지지 않고 어딘가 밝지 않은 느낌에 늦지 않은 줄 알았건만, 그저 흐린 날씨 탓에 세상이 어두운 것이었다. 6시면 눈이 떠졌어야 했다. 예상보다 늦은 시간의 기상 탓에, 아침에 하고자 했던 것들을 버거워져서 모두 넘어가버린다.

정리해서 옷장에 넣어야 할 옷가지들이 방 한편에 널브러져 있는 모양새를 보니, 깨끗한 옷들임에도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얼마나 겉보기로 판단하는 인간적 기준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부터 미라클 모닝이라고, 아침 루틴으로 세워둔 것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겨우 하나 정도만 해내는 지경이 되었다.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려다가도, 하나라도 하는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나라도 나를 위로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이다.

이미 잠을 깨어버렸지만, 습관처럼 커피를 내린다. 디카페인/카페인 두 종류 캡슐 중 아침이니 고민할 것도 없이 카페인이 든 커피를 집어 든다. 이제 날씨가 제법 서늘해져서, 얼음 없이 커피를 즐길 수 있기에 좋다. 더위에 너무 취약한 나는, 따뜻한 커피를 좋아함에도 한 여름에 따뜻한 커피를 내 몸에 들이붓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이제 다시 서늘해진 가을의 기운에 따뜻한 커피가 기분 좋은 향은 내뿜으며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주었다. 계획과는 다른 아침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는 책상 앞으로 가서 노트북을 연다.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이제 주말의 시작이니 시간이 많다는 느낌이다. 어쩐지 남은 주말동안 해야 할 것을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침의 기운에서 얻은 자신감일까? 딱히 무언가를 쓰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워드 프로그램을 열고나니 키보드에 손을 얹으니 무언가 쓸 말들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조금 더 고민을 해야만 써 내려갔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내 머릿속에 표현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종종 내가 글을 쓰는 거지, 손가락이 움직이고 나의 생각이 따라가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글이 터져 나온다. 그렇다고 나의 글이 더 좋아진 게 아니란 것은 안다. 그저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사라졌다거나, 글쓰기가 전보다 편해졌다-라고 하는 게 맞겠지.

써내려 간 글을 쓱 보고, 조금씩 짧게 수정해 본다. 그런 후 드래그하여 챗지피티에게 글을 평가해 달라며 평점도 물어본다. 요즘은 어쩐지 점수가 후해진 것만 같았다. 5.0 만점에 4.8점을 주더라. 내가 성장한 것인지, 챗지피티가 그저 내 편이 되어 나를 우쭐하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글을 쓰느라 한편에 놓였던 따스한 커피는 어느새 식어 있었다. 기분 좋던 커피 향은 모두 사라졌다. 커피 향은 잃었지만, 4.8점의 글은 얻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다.


10분 글쓰기>

처음 와본 카페 모각

내가 모임장인데 모임에 늦었다는 사실이 조급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가며 스터디룸이 위치한 카페를 찾아갔다. 저 앞의 골목에서 꺾으면 바로 나타날 거란 생각에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골목에 다다르니, 경사가 45도는 될 것 같은 오르막이 보였다. 나는 오르막이 정말이지 너무 싫다. 계단이나 약간의 오르막만 올라도, 내 스마트워치에서는 심박수에 빨간 불이 들어오며 160을 넘기기 일수다. 체력부족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체력이 괜찮던 어린 날에도 언제나 오르막을 싫어했다. 그렇기에, 이런 오르막에 위치한 카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페에 다다르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에서 딸랑 소리를 내자, 카운터 한 구석에서 딴짓을 하고 있던 점원이 고개를 든다. 카운터 맞은편 오른쪽에는 세 개의 둥그런 문이 커다랗게 있었다. 그곳들이 스터디룸인 모양이었다. 두 개의 문이 닫혀있고, 마지막 하나는 열려있었다. 모임에 참여한 분이 이미 도착했을 거란 생각에, 닫힌 두 곳 중 하나겠거니 했다. 이름을 말하자 점원이 열린 문을 가리켰다. 내가 들어올 거니 문을 열어둔 모양이었다. 늦었지만 서둘러 오느라 목이 마르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허한 배를 부여잡고, 먹고 마실 것을 주문한다. 진동벨을 들고는 스터디룸으로 향한다. 처음 뵙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반투명한 문 뒤로 살짝 보인다. 서둘러 다가가며 얼굴을 보기도 전에 늦어서 죄송하다를 내뱉는다. 오늘의 모임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며, 그렇게 스터디룸에 들어간다.


10분 글쓰기>

묵직한 노트북

오늘도 가방에 담긴 노트북이 내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오래되기도 했지만, 처음 사던 때에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려야 한다며- 게임도 하지 않는데 게이밍 노트북을 샀더니, 묵직한 노트북을 받아 들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더 이상 프로그램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런 후, 그저 묵직한 노트북만 내게 남았다.

물건을 잘 사지 않는 편이다. 고장 나지 않으면 사야 한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최근에도 4년 넘게 쓴 휴대폰이 충전이 잘 되지 않고, 액정도 일부가 나가기에 바꿨다. 이도, 치안이 좋지 않은 해외를 가는데, 그곳에서 휴대폰이 충전이 안될 상황이 두려워 결정한 교체였다. 그러니 고장 나지 않는 나의 노트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고 다닐 일도 딱히 없어서, 무거움에 대해서 평소 잘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 오늘과 같이 노트북을 챙겨야 하는 날은, 정말이지 “짊어진다”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이 묵직한 노트북을 가방 안에 넣고 집을 나서게 된다.

서늘하고 시원할 것만 같았던 아침에 비가 와서인지 습한 기운데- 약간의 빠름 걸음에도 땀이 났다. 그런 와중에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부터 피로감이 찾아온다.

노트북은 변함없이, 한결같이 무거운데- 나의 몸이 점점 달라지는 느낌이다. 한결같은 이 무게감이 이제는 조금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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