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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을 덜고 보다 더 자유로운 디지털 드로잉

by 이확위

완벽주의 어린이

"색칠하다가 선 밖으로 삐져나가면 울어버렸다니까."

지금도 엄마는 내게 종종 말하곤 한다. 어릴 적 다소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나는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다고 했다. 잘하려 애쓰던 때는 하얀 도화지 위에 처음으로 선을 긋고, 물감을 칠하는 게 겁이 났다. 한 번의 실수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작이 언제나 두렵기만 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있어서 나보다 뛰어났던 언니와 비교당하기가 싫어서, 언제나 숨어서 몰래 끄적이곤 했다. 점차 자라면서, 내가 기준으로 삼는 "완벽"을 나 스스로가 이룰 수 없는 정도란 걸 점차 깨달으면서- 회피형 완벽주의자로 변하며 나는 애쓰기를 관뒀다.


취미가 된 그림 그리기, 그 시작

2016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에 해외 브이리그 유튜버 사이에서 유행이던 것이 바로 "What I ate in a week"였다. 자신이 일주일간 먹은 것들을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었는데, 먹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그런 영상이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나의 일상 속 식단을 영상으로 찍거나 하는 것은 귀찮았다. 해보진 않았지만 영상 편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힘들다고는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먹은 것을 펜으로 끄적였다. 그리고 집 안 어딘가 뒤져 물감으로 가볍게 색칠을 했더랬다. 보통은 나의 그림을 누군가에게 보이진 않는 편인데,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일 친한 친구에게 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었다. 어쩌면, 스스로 제법 만족한 그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느낌 있다며 칭찬해 주었고, 계속 그려보라며 나를 북돋아주었다. 기분이 좋았고, 재미도 있었기에 계속 하자 다짐하고는 그렇게 한동안 내가 먹는 것들을 그려나갔다. 2025년까지 이어 온 나의 취미- 그림 그리기의 시작이었다.


애쓰지 않고 그냥 하는 거

그림을 취미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다짐했던 한 가지는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스트레스받을 거면 하질 말자."였다. 어쩌다 잘 그려지는 날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에 '이번에도 잘 그려야지'라고 생각하고 그리기 시작하면 힘이 들어가는 건지 자연스레 그려지질 않았고 매번 망치곤 했다. 몇 차례 반복되면서 나는 애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잘하려고 할 때, 그렇지 못한 결과를 마주하면 실망하게 된다. 기대감이 없으면 실망도 없었다. 나는 그림 그리기는 어디까지나 취미이니, 즐기는 것- 계속해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그리다 보니 언젠가부터 빈 종이 위에 선을 그어나가는데 두려움이 사라졌다. 잘못 그려도 괜찮으니까. 다시 그리면 되니까-라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 앞에서 바로 펜으로 그림을 그릴 일이 있었다. 친구가 그려보라 해서. 바로 그렸던 거였는데. 그때 나는 "그냥"이란 말을 자주 썼던 것 같다.

"그냥 그리는 거지-"

"그냥 하는 거야."

"그냥 하면 돼."

그림 그릴 때 나의 마음 가짐이다.


아이패드로 끄적여보기

아이패드를 산지는 한 참이라 내 아이패드는 옛날 모델이다. 하지만, 처음 살 때처럼 많이 쓰지 않기에 딱히 새로운 모델로 업그레이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는 수리를 받을 상태이지만, 이마저도 더 자주 쓴다면 수리받자는 마음으로 고장 난 상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난 주로 실제 종이에 펜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에, 2024년 작년에 잠시 아이패드 드로잉을 했던 적이 있다. 한 달 채 못 되게 잠시 그렸었다. 본격적으로 그릴 생각이 없기에 그림 어플도 아니고, 굿노트- 노트 어플에 펜과 사인펜 기능을 가지고 끄적였다. 여전히 마음가짐은 언제나와 같았다. '그냥 그리자.'


부담이 덜한, 디지털 드로잉

물감으로 그릴 때보다 그림이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물감으로 그릴 때의 나의 한계는 실제 표현하려는 색을 만들지 못하는 데 있다. 어디서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라 혼자 끄적이며 그리다 보니, 색채학이나 기본이 부족하여 몇 개 안 되는 내 물감들로 원하는 색상을 만들지를 못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패드를 이용한 디지털 드로잉은 너무도 편리했다. 온갖 색의 팔레트에서 원하는 색을 고르면 된다. 색을 모르겠으면, 사진 같은 걸 가져다 두고- 그 위치의 색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참고해서 그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의 원래 색상을 표현하는 게 너무나도 수월했다. 처음에는 그 수월함이 신났다.


그런데 그렇게 몇 주를 그리다 보니, 그게 너무 쉬운 것만 같았다. 이렇게 그려서는 발전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은 어려움에 도전하면서 성장이 있다는 꼰대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대로 디지털 드로잉만 계속해서는 물감으로 돌아갔을 때 전혀 발전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그리지 않고 그만둬버렸다.


다시 본 2024년의 아이패드 그림, 그리고 새로운 다짐

아이패드가 고장 난 줄 알고 충전을 하지 않고 한참을 방치하다가, 다시 연결해 보니 충전이 되었다. 굿노트 어플 안에서 이제는 필요 없어진 여러 노트들을 지우며 정리했다. 그러다 2024년에 그렸던 아이패드 그림들을 발견했다. 이제와 다시 보니, 제법 그럴듯한 완성도를 보였다.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들에서는 보이지 못하는 완성도였다.


그렸던 그림들을 한 번에 보기 위해 한 페이지에 한데 모아보았다. 디지털 드로잉이기에 복사나 붙여 넣기도 자유롭고, 사이즈 조정도 자유로웠다. 저장의 용이함과 더불어, 혹시라도 생각이 있다면 스티커나 엽서 등 굿즈 제작으로도 디지털 드로잉이 월등히 편리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잠시 그리다 그만뒀던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합리화를 하려고 챗지피티에 디지털 드로잉은 실제 물감으로 그리기보다 색 선택에서도 훨씬 쉬우니 크게 도움이 안 되지 않냐며 질문을 했다.

이에 챗지피티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디지털이 '쉽다'라기보다는, 물감과 달리 스트레스 요소가 줄어서 표현에만 집중할 수 있다."

- 실수해도 되니까 과감해질 수 있다. (손이 훨씬 자유롭고 시도하는 폭이 커져서 그림 실력이 늘 때 큰 장점이다.)

- 색을 섞을 필요 없는 편리함. (디자인 감각만 있으면 바로 결과물이 나온다.)

- 브러시가 기술적 한계를 대신 해결해 준다.


이런 말을 읽고 나니, 지금도 그럴듯하게 나오는 디지털드로잉에서- 지금껏 이루지 못했던 내가 바라는 완벽함에 최대한 가까워질 수 있는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수준에서 조금 더 애써본다면- 어쩐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실수를 해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부담을 덜어내고, 시도하고 수정해나가다 보면-

내가 꿈꾸는 완벽에 가까운.

내가 그린 그림 중 가장 완성도 있는 그림에 가까워질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아이패드를 충전했다.

아이패드 드로잉에 가장 널리 사용된다는 어플도 다운로드하였다.

한동안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해봐야지.

보다 자유롭게. 맘껏 나를 표현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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