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치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 목적ー<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의 것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다시 말하자면,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中
"비정치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인데, 들을 때마다 깊이 공감했다.
어릴 때에는-몸과 정신적인 부분에서, 특히 정신적으로-나도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학을 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본 이런 댓글에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완전 정치병들 걸린 것 같아. 여기서도 이런 소리를 하다니"
한 때는 나도 그리 생각했었다. 정치란 권모술수, 그러니까 거짓과 부패로 만연한 나와는 상관없는 더러운 오물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런 오물덩어리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런 사고의 방향, 즉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의 회피하는 것 자체가 내가 생각했던 정치보다 더욱 추악하고 썩어있는 것이었음을 이제 와서 부끄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치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조지 오웰의 견해와 내 견해는 상당부분 일치한다. 정치는 세상에 대한 어떤 관점이고 그 관점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우리가 비 정치성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치의 넓은 정의 속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비 정치적이라 느끼는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한 가지 관점이 그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을때, 비 정치성이란 다른 관점에 대한 거부와 동일한 것이 된다.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상태는 오히려 정치성의 포화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뜻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은 모두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기존의 통념에 대항하는 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이런 쪽으로 합의 보면서 살고 있는 거 아니야? 그냥 좀 닥치고 살자"
우린 이런 생각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정치적이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을 지극히 순수한 듯 꾸미는 인물들의 추악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