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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Nov 09. 2024

올해도 어김없이 네가 왔다.

가을이 되면 눈이 가렵다. 코도 답답해지고 목도 간질거린다. 눈이 건조해서일까 싶어 손등으로 눈을 비비다가 문득, 너를 떠올린다. 너와 처음 만났던 그 가을, 그날도 내 눈이 이토록 가려웠던 게 기억난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가을꽃가루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너와의 첫 만남은 평범했다. 특별한 로맨스나 영화 같은 장면은 없었다. 그냥 어느 늦가을 오후, 차분한 공기가 느껴지던 거리에서. 나는 카페에서 나오는 길이었고, 너는 카페로 들어가고 있었지. 문을 나서다가 우연히 마주친 그 순간, 우린 서로 잠깐 멈춰 섰다. 바람이 불었고, 내 옷깃을 살짝 흔들며 어디선가 너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무슨 향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미안해요,“ 네가 말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지. 손에 들린 커피 잔과 종이 가방이 바람에 흔들리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잡아주었다. 그날따라 공기는 서늘했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지.


그게 첫 만남이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갈 순간이라 생각했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나중에 이렇게나 자주 떠오를 줄은 몰랐어. 우리는 그날을 계기로 가끔 마주치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되었지. 너는 항상 향기로운 차를 좋아했고, 가을마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네 향기가 나를 자극했어. 내 알레르기가 그 향기를 타고 함께 오는 느낌이랄까. 가을이 오면 네가 언제나 떠올랐어. 지금도 그래.


가을의 공기는 차분하지만 가끔은 서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그날 이후로 가을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지나가다 맡은 향기에 마음이 저려온다. 바람이 불 때마다 네가 맡았던 차 향이 살짝 스며들고, 그 향이 어느새 나를 감싸며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그것도 꼭 네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은 너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눈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네가 가을을 참 좋아한다고 했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너를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가을이 좋은 이유가 뭐야? “ 내가 물었을 때, 네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말했다.

”음, 차분한 느낌? 그리고 공기가 참 좋잖아. 차가우면서도 뭔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게, 나한테는 참 편해. “

나는 그때 알레르기 때문에 계속 코를 훌쩍이며 웃었다.

”나한텐 코랑 눈이 간지러워서 고역인데. “


너는 그 말에 웃었지만, 네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어.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함을 찾는 감각, 그건 아마 너만의 방식이었겠지. 그리고 너는 그 느낌을 내게도 알려줬어. 그때 이후로 나에게도 가을은 단순한 알레르기의 계절이 아니라, 너와 연결된 계절이 되어버렸거든.


하지만 그 따뜻함은 오래 머물지 않았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그 후로는 종종 스치는 바람 속에서만 너를 떠올리게 되었어. 가끔 걷다 보면, 문득 그날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에 스친다. 한동안 네가 내 가슴속을 간지럽히다가 사라져 버린다. 마치 그때처럼, 네가 말없이 내 곁을 떠났던 것처럼.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꾸 너를 떠올리게 돼. 네가 남긴 그 향기, 그 느낌이 바람과 함께 다시 나를 스쳐 갈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알레르기 탓에 눈이 간질간질하긴 하지만, 네가 주었던 그 가을의 느낌도 그 안에 섞여 있는 것 같아.


이맘때쯤이면 나는 늘 눈과 코, 그리고 목이 간지러워져. 그 감각들이 너와 나의 가을을 다시 떠오르게 해 주지. 네가 가을을 좋아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가을을 좋아하게 되겠지. 지금은 그저 간지러운 가을일뿐이지만, 너를 기억하는 내 마음속에서 그 계절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아마도, 네가 남긴 그 향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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