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formoflove Nov 12. 2024

영화

우리는 한 번 영화관에 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날이 너와의 시간 중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일 것이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고, 그냥 주말 오후. 우리는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갔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데이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스크린이 아닌 너에게 시선이 자꾸만 머물렀다.


영화는 유명한 로맨스 영화였다. 흔한 사랑 이야기, 다소 예측 가능한 전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영화 속 이야기보다 너의 표정이 나를 더 끌었다. 너는 감정이입이 강한 편이었지. 기쁜 장면에서는 환하게 웃고, 슬픈 장면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스크린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너'를 감상하고 있었다.


"왜 자꾸 나 봐?"

너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살짝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너 표정이 더 재미있어서."

"에이, 집중해. 영화 봐야지!"

너는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보고 있었다. 영화 속 감정에 따라 미세하게 변하는 너의 얼굴. 그 순간, 영화는 배경이 되었고, 주인공은 너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주인공들이 갈등을 겪고, 결국 이별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너는 정말 슬펐던 것 같다. 나는 옆에서 네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걸 봤다. 네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그대로 흘러내렸고, 나는 그걸 본 순간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괜찮아?"

나는 나지막이 물었다.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냥... 이 장면이 좀 슬퍼서."

그리고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나는 네가 왜 그렇게 슬퍼했는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장면 속에서 우리가 겪을지도 모를 이별을 미리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 역시도 그 순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될까?'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그 손을 꼭 쥐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밖으로 나와 걷는 동안, 둘 다 조용히 있었다. 나는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네가 말했다.

"오늘 영화... 생각보다 더 여운이 남네."

"그러게. 그냥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깊었어."

내 대답은 그저 영화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다른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너와의 이 순간이, 우리가 이 영화를 본다는 이 사실이, 그저 가볍지 않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혼자서. 너와 함께했던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네가 생각났고, 네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특히 네가 눈물을 흘리던 장면. 그 장면에서 너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우리는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까.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영화도, 너도 점차 내 일상 속에서 흐릿해졌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 영화는 더 이상 내 인생의 특별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영화가 상영되던 그날, 그 시간, 그 순간만큼은 내게 있어 가장 빛나고 있었다.


가끔 친구들이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짓곤 한다. 그들은 그저 영화 자체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 영화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낸 짧은 순간들이 모두 녹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여전히 그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단지 영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영화 속에서 네가 웃고 울던 그 순간들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했기 때문이다. 너와 함께한 그 시간이 나의 영화가 되었고, 우리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었으니까.


다시 그 영화를 볼 일이 있을까?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날 본 네 모습이, 네 웃음과 눈물,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눴던 대화들이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으니까.

이전 27화 어제의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