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어느 카페, 오후의 햇살이 창문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테이블 위에는 두 잔의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졌지만, 그 향조차 두 사람 사이에 맴돌지 않았다. 남자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자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서로를 마주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할 주제도, 감정을 나눌 방법도 이제는 없어진 것 같았다. 마치 가을바람처럼 그들의 관계는 이미 쓸쓸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요 며칠 동안 혼란스러웠다. 몇 달 동안 그를 잡고자 애썼고, 그를 잃는다는 두려움 속에서 버텨왔다. 하지만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만큼 상처받았고, 그 상처는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깊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것이 더 이상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싫어진 게 아니었다. 여전히 그와 함께 있는 순간들은 소중했지만, 어쩐지 그 소중함이 그녀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사랑은 더 이상 그녀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치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는 듯한 고통만 남았다.
”미안해. “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어딘가에서 지친 기운이 느껴졌다.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들었지만, 그 말이 더는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마음속의 무거움이 차오르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그녀조차도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이미 멀어진 그들의 관계 자체에 있었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
그는 한 번 더 말했다. 마치 반복하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그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바닥에 스치듯 가볍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은 눈물. 그저 그가 닦아주기만을 기다리는 듯 천천히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 손길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왜 우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가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그녀는 이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할 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랑이 식은 것도 아니었고, 그를 미워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더 많이 상처 냈다. 그를 계속 붙잡으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를 보내는 것도 두려웠다. 그녀에게 사랑도, 이별도,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서툴렀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떻게 그를 떠나야 할지 그녀는 몰랐다.
카페 안의 공기는 차분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천천히 흘러갔다.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지만, 그들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되니 가슴이 조여왔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를 떠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별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딘가 달랐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가을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들어오고,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차가운 공기는 그녀의 마음까지 스며들었다. 어젯밤 카페에서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치며 지나갔다. 그와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 그가 건넨 사과, 그리고 그녀의 눈물. 모든 것이 흐릿하고, 꿈처럼 느껴졌다. 그와의 마지막 대화는 여전히 생생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순간을 지나왔다.
그녀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자, 마치 그와의 이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붙잡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그를 놓아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심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마음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감정들이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와의 시간이 소중했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랑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 사랑을 놓고 싶지 않았다.
반면 남자는 그날 아침 일찍 깨어났다. 어제 카페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흘렸던 눈물, 그가 건넸던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그녀의 침묵. 그는 그 모든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가 어제 그녀를 붙잡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마음을 떠나보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배려가 옳았는지, 그 순간의 선택이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커피를 끓였다. 어제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와는 달리, 오늘의 커피는 씁쓸하기만 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의 커피 향은 따뜻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떠올리며 커피를 마셨다. 이별이 끝난 지금, 그의 마음은 덤덤해 보였지만 속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이제는 그들 모두를 상처 내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그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 저녁, 남자는 그녀와의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제 잘 지내. “
그녀가 남긴 짧은 인사였다. 그 문장은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고, 이별의 마침표였다. 그는 더 이상 답장하지 않았다. 그 말 그대로, 이제 그녀는 그의 삶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 그녀를 붙잡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이별은 그렇게 그들의 일상 속에서 찾아왔다. 한순간의 격렬함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잔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