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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Aug 03. 2024

빗 속의 어느 따듯함

하노이에도 장마는 계속되고

찌는 듯 더운 날이면 잠깐씩 세차게 쏟아지던 스콜과 이미 익숙한 사이여선지

하염없이 퍼붓는 장맛비도 친근한 친구 같아.

수영장 위로 토로토록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따듯한 커피 한 잔... 이렇게 좋을 수가…




화단의 배관 파이프를 수리하러 오신 기술자 아저씨가 가던 길을 멈추고 노란 화분 앞에 갑자기 멈춰 서신다.

물끄러미 화분 한 번 하늘 한 번 쳐다보신다.

나는 유리문 밖의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다.


‘화초가 예뻐서 바라보시는 걸까...‘

논라 하나 달랑 쓰고

어깨로 비를 쫄딱 내리 맞으며 잠시 생각하던 그는

화분을 들어 반대편 계단 위로 옮겨 두신다.


'내 화분인데 왜 그러시는 거지?'

조금 있다 살짝 문 밖에 나가 보니

화분은

마른땅 반 젖은 땅 반 중

마른땅에 앉아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장맛비가 주륵주륵 퍼부어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던

목이 마른 화초는

따듯한 아저씨를 만나

목청껏 소리쳤나 보다.


건물 처마에 가려

풍요로운 장맛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화초의 목소리를

지나치지 않았던 아저씨


수리를 마칠 때까지

화분이 빗물을 꿀꺽꿀꺽 마시게 해 주셨다.

제 자리로 화분을 돌려놓고는 유유히 사라지시는

뒷모습을 얼른 쫓아가 셔터를 눌렀다.


소리 없는 나의 감사인사도 들으셨겠지?


주인도 미처 못 챙긴 노란 화분의 목마름을

안타까이 여겨준 그의 착한 마음씨에

촉촉한

따듯한

비 오는 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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