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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설움

by 신화창조
조용한 길.jpg

1939년 어느 날 밤,

광화문 근처 허름한 술집에 스물아홉, 스물다섯 두 청년이 마주 앉았다.

행색은 남루했고 표정은 어두웠다.

일제가 동아시아에서 침략 전쟁을 일으키며 한창 기승을 부리던 이른바 암흑시대,

불온사상범으로 지목돼 인근 경찰서에서 혹독한 문초를 받고 막 나온 청년들이었다.


말없이 술을 마시던 스물다섯 청년이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을 꺼내 그 위에 뭔가를 끄적였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가워라…….’


답답한 심정을 글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물끄러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스물아홉 청년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참에 노래나 하나 만들자.”


이렇게 태어난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1절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네

선창가 고동 소리 옛 임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2절

타관 땅 밟아서 돈 지 십 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3절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가워라

가야 할 지평선에 태양도 없어

새벽 별 찬 서리가 뼛골에 스미는데

어디로 흘러가랴 흘러갈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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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그네 설움”이다.


1, 2절은 많이들 알겠지만 3절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스물다섯 청년은 가수 백난설 선생이고, 스물아홉 청년은 작사가 조경환 선생이다.

1년 후 발표된 이 노래는 크게 히트를 해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망국의 한과 좌절, 나라 없는 서러움, 구구절절 애처롭다.

민족을 대표하는 빅히트 곡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리 열심히 살아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때,

살다가 좌절과 실망을 느낄 때,

막걸리 한잔 앞에 두고 구성지게 불러주면 구겨진 마음이 다소나마 펴지는 그런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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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가을날 오후,

조용한 산책길에 나 홀로 부르는 노래,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어져,

앨범 속에 들어간 옛사람 생각에


3절까지 다~~ 불러본다.

나그네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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