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미련스럽게 나를 괴롭히던 감기가 지나갔다.
뭐 그렇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일주일을 꼬박 채우고 가다니.
오랜만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다. 악전고투였지만 일상은 지켜졌다.
애쓴 자신이 대견하다.
코로나 시기가 가져다준 교훈, 바이러스는 쉽게 볼 녀석이 아니다.
코로나나 독감이나 감기는 모두 바이러스다.
수백 종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우리의 숨통을 누를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더라.
긴장을 늦추지 말고 조심조심 사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20년 전 함께 근무했던 후배라고 해야 할지 부하라 해야 할지
아무튼, 아름다운 인연 하나가 오늘 다녀갔다.
열여덟 나이 차이가 있고 본부장 때 뽑은 신입사원이니 부하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도 같다.
부장이란다.
회사를 새로 옮겨 인사차 왔다고 하는데
몇 마디 말을 나누어보니 나보다 더 나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입사하고 처음으로 모신 본부장이라 그에게 남다르다고 했다.
이렇게 기억해 주니 감사한 일이다.
솔직히 난 그 친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이름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티 안 내고 아는 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본인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들킬 뻔했다.
진심 미안한 일이다.
명함을 받고 30분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같이 근무할 땐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말도 못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말 잘 한다. 바로 밑 후배나 동생 같이.
세월이 그를 이만큼 키워 놓았다.
20대 청년이 40대 중년 부장이 되었으니.
잘살고 있는 듯하다. 대견하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마디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요!”
빈말이라는 거, 잘 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술만 끊지 않았더라면 소주 한잔했을 텐데 아쉽다.
그 친구의 기억 속에 본부장은 ‘斗酒不辭 淸濁不問’일 텐데,
실망하게 해 어쩌나.
감기도 나았고 예상치 못한 반가운 사람도 만났고,
모처럼 기분 좋은 오후였다.
행복이 별다른 데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