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명동 백작 詩人 박인환

by 신화창조
목마와 숙녀.jpg

죽은 아폴론

─ 이상(李箱) 그가 떠난 날에


오늘은 3월 열이렛날

그래서 나는 망각의 술을 마셔야 한다

여급 ‘마유미’ 가 없어도

오후 3시 25분에는

벗들과 ‘제비’ 의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그날 당신은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

허망한 서울의 하늘에는 비가 내렸다.


운명이여

얼마나 애타운 일이냐

권태와 인간의 날개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도

성좌를 간직하고 있다.

정신의 수렵을 위해 죽은

랭보와도 같이


당신은 나에게

환상과 흥분과

열병과 착각을 알려주고

그 빈사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문학에

따뜻한 손을 빌려준

정신의 황제.


무한한 수면(睡眠)

반역과 영광

임종의 눈물을 흘리며 결코

당신은 하나의 증명을 갖고 있었다

‘이상’이라고.


─ 「한국일보」(1956. 3. 17)




이 시를 써 놓고 그는 3일을 폭음하고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

1926년에 태어나 1956년에 죽었으니 30년을 살다갔다.


당시로는 키가 초장신인 180에 이르렀고 엄청나게 잘 생겨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았단다. 비교적 산다는 집에서 태어났고 경기중학교를 입학하는 등 환경도 좋았고 두뇌도 명석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에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에 휩쓸려 학교는 제대로 못 다녔단다. 이 자유롭고 가슴 뜨거운 청년의 호기심을 누가 막을쏘냐.


이상은 우리나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다. 그런 이상을 열여섯 아래 박인환이 숭배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후 20년 가까이 지난 후에 폭음을 하고 따라 죽을 것까지야.


포스트모더니즘 詩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절창 “목마와 숙녀”도 어렵다.

허나, 특이하게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냥 좋고 가슴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

그의 인생과 비슷하다.

어느 동료 작가가 겉멋만 든 허접 쓰레기 같다고 대놓고 비난할 정도로 동의 받기 힘들게 살았지만 그 인생 30년마저도 이유 없이 그냥 아름다워 보인다.


-----


찬바람 부는 겨울 어느 날,

눈이 조금 오면 더욱 좋겠지.

강원도 인제에 있는 그의 문학관에 한 번 가보길 권한다.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듣게 되는 박인희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느 날 가볍게 차려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