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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少利 순대

by 신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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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전쯤인가 마장동 거래처를 방문했다가 고객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쌀쌀한 날씨에 뭐가 좋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선택한 메뉴가 근처 순댓국이었다.

추울 땐 따듯한 국물이 있는 메뉴가 제일이니까, 게다가 맛 집이라는데.


진한 국물에 푸짐한 고기, 맛있는 깍두기.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값도 매우 저렴해 미안한 마음에 수육까지 주문해 먹었다.

한참 먹다가 우연히 벽에 붙은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소리 순대.”


돼지의 내장 중, 위의 일부분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맛있게 먹다보니 벽에 메뉴판 외에 액자 하나가 또 눈에 들어 왔다.

붓글씨 액자였다. 아주 잘 쓴 글씨였다.


오소리, 吾少利, 나 오, 적을 소, 이문 리.


바로 “나는 이문을 적게 남기겠다.”는 뜻이 아닌가.

식사를 마치고 주인장께 물어봤다.


“무슨 사연이 있나요?”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식당 주인의 선친이,

가난한 동네이며 푸줏간이 많은 마장동에 전쟁 통에 식당을 열었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막노동을 하는 이들을 상대로 돼지 부속품으로 국을 끓여 팔았는데,

가격이 매우 싸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심지어 마음씨 좋은 선친은 걸인들에게 공짜로 주기도 했단다.


어느새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연로한 선친은 자식에게 식당을 물려주기에 이르렀다.

바로 선친이 물려주며 유언처럼 써 붙인 글자가 바로 吾少利라고 했다.


“우리 집 오소리는 다른 집과 의미가 다릅니다.”

“아버지가 날 못 믿어 써 붙인 겁니다! 하하”


식당 주인의 대답에 선친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한껏 묻어 있었다.


아직도 마장동에 그 식당이 있는가 모르겠지만 이렇게 쌀쌀한 날이면 오소리 순댓국 한 그릇 후루룩 마시고 싶다.

맛은 두 번째로 하고 주인장의 따듯한 정과 멋을 먹고 싶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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