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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Dec 01. 2019

매일 티파니에서 아침 먹던 악마는, 지방시를 입었다

브랜드와 자아의 탈영토화에 대하여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뚫는 자 흥한다.


노마드의 상징적 격언이다. 수성하고 지키려 들면 언젠가 적에 의해 망하지만, 탈영토화를 지향하며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자는 무한 영토에서 군림한다. 칭기즈칸과 동유럽의 역사적 상황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제 이 격언은 20세기 문화 브랜드 기업들과 그 기업을 이끈 사람들의 살아있는 교훈에서 크게 확인할 수 있다.


1차 및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여성 패션의 남성화와 여성미의 축소가 일어났고, 질과 양에서 부족한 배급제로 인해 삶의 멋이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타트업처럼 프랑스 파리 일대에는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창의력 하나로 창업하였고, 이들을 위한 하청 공장으로 이탈리아 밀라노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공장들이 삼성전자나 애플 등의 IT 선두기업의 하청을 맡다가 결국 이들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떠오르듯이, 이탈리아 패션 산업은 프랑스와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하게 된다.


20세기 패션 디자인 브랜드와 몇몇 혁신기업들의 성장 역사는 정체성의 부여, 확립 및 이를 통한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는 탈영토화 과정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명품 브랜드를 경멸하던 앤디는 결국 미란다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 만큼 브랜드 명품으로 악마처럼 변신하지만, 결국 미란다와의 연결 고리인 휴대폰을 물에 던지고 스스로 길거리를 당당히 걸어 나간다. 그리고 그녀를 못마땅해하던 미란다 역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앤디의 당당한 걸음걸이에 흐뭇한 미소로 자신의 잃어버린 현재를 그녀에게서 기대한다.


프라다를 입은 악마는 팜므파탈이 되었고 팜므파탈은 이 사회가 정해준 장소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모든 장소로 활동 폭을 넓힌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정작 프라다는 동네 샵 수준에서 빌빌거리다 페미니스트 손녀에 의해 값싸고 대량 생산 가능한 제품을 만들며 악마가 되었다. 전세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짝퉁과 럭셔리에 어울리지 않는 페티시즘으로 악마가 되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또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현대 여성의 탈영토화를 적극적으로 쟁취하지는 못하지만, 황금시대 할리우드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남자 주인공에 의해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 것이 물론 티파티 주얼리샵이다. 커피와 크로와상을 양 손에 들고 미니 블랙 드레스를 입은 줄리(오드리 햅번) 아침마다 뉴욕 5번가의 티파니 샵 쇼윈도 앞에서 전례 의식을 치른 뒤,


"고요하고도 고고한 티파니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자신의 측은하고 수동적인 삶을 구원해 줄 백마 탄 남성이라 여겼던 브라질 부자와의 결혼이 틀어지자, 그녀를 사랑해 온 가난한 작가 폴이 과자 봉  경품 반지 하나로 사랑을 고백한다. 단돈 10달러로 티파니에서 세공한 싸구려 경품 반지다. 하지만 영화 속 티파니 점원은 멋드러지게 웃어준다.


티파니는 이해력이 넓습니다.
Tiffany's is very understanding.




82 면각으로 다이아몬드를 세공할 정도로 당시 미국 주도의 가공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을 연 티파니 황금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에는 지방시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오드리 헵번은 지방시의 뮤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은색, 타이트한 상의, 그리고 탁 트인 뒷모습은 고딕 양식의 지방시적 취향이 오드리 헵번을 통해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지방시와 티파니의 합작으로 구시대 유럽과 신시대 북미 대륙의 취향과 패션이 하나의 융합 시장으로 확대된 사건이다.


이는 블랙홀처럼 미국 기업에게 빨려 들어가던 유럽의 산업이 스스로 자생하고 미국 기업과 대적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프레타포르테가 아닌 오뜨쿠튀르가 강력한 힘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프레타포르의 선구자, 이브 생 로랑



패망한 열강의 상징이었던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이들의 암울함과 구시대적 패션 트렌드에 항거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디자이너가 있다. 아르마니와 미야케이다. 아르마니는 무채색과 흘러내리는 듯한 재질의 재킷 등으로 몸에 맞는 의상을 추구했고, 이세이 미야케는 몸의 살에 맞붙어 입는 사람의 행동거지로 패션이 완성될 수 있는 '플리츠 플리즈'를 개발한 디자이너다. 갑옷 같은 슈트와 재킷에서 벗어나 헐거운 면직이 외옷으로 드러나고도 이를 무채색으로 나타낸 암울의 감정을 디자인으로 감동을 줬다.


종이가 없던 고대 그리스ㆍ로마 때. 글자나 기호를 남기기 위해서는 밀랍판에 철필을 긁어 기록했다. 밀랍판은 연한 재질이어서 손으로 쓰윽 문지르고도 철필을 이용해 다시 밀랍판 위에 글자를 남길 수 있었다. 이때의 밀랍판을 tabula라고 불렀고 이때의 철필을 stilus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의 태블릿과 스타일러스의 원형이다.


창작은 긁고 지우는 과정이다.



패션 디자인 브랜드의 성장 과정은 창작하고, 지우고, 문질러 없애고, 다시 고뇌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생 로랑, 발렌시아가, 페라가모와 젊은 디지이너의 천재성으로 일어선 브랜드도 있지만, 프라다처럼 수세대를 걸쳐 완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의 성공에는 단 하나의 절대적 원칙이 존재했다.


길을 뚫는 자만이 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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