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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영어 연수 왔어요

국외연수보고서

by 김Genie

일요일 저녁, 비행기에 타서 꼬박 7시간을 엉덩이가 아프게 잠만 잤는데 일요일 아침에 하와이 공항에 내렸다. 월요일 이어야 하는데 일요일이어서 하루를 더 살게 된 것 같다.


이번 충북교육청 주관 영어교사 심화연수를 통해 하와이 주립대학교에서 12일 동안 수업을 듣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미국 현지 초등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는 ICC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하와이 현지에 오기 전, 평일 밤이나 주말에 화상과 대면으로 숙명여대 TESOL과정까지 이수하였기 때문에 이번 연수를 통해 나에게 투자되는 금액만 몇 개월 치 월급을 훌쩍 넘지 않나 싶다.


너무 과분한가? 우리 아빠 말마따나 초등교사, 그거 뭐 초등학생이랑 시간 대충 보내다가 오후 2시면 애들 집에 보내고 노는데 초등교사 한 명에게 이 정도의 예산을 투자하는 연수는 돈지랄일까 아닐까.


얼마 전에 새내기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저는 받은 만큼만 하려고요."

딱히 반박할 생각이 없었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제스처는 아니었고, 트러블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자 한 거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 내내 그 말이 생각났다. 나보다 경력이 10년 정도 적으니까 월급은 100만 원 넘게 적을 거고 그 외의 모든 수당들도 일제히 적을 거다. 요즘 같은 물가에 부모님 집에서 빌어먹지 않는 이상 미래를 대비하는 적금은 월 100만 원 들기도 빠듯하겠지 싶다. 받는 만큼 한다 치면 열정적으로 할 필욘 없겠다 싶었다. 최저시급보다 조금만 더 일하면 되겠지(이쯤이 '너네 방학 있잖아.'라고 할 타이밍이다).


우리가 이만큼밖에 못 받는 게 소문났는지, 각종 악성 민원 사례가 릴스로 돌아다녀서인지 교육대학교 입시결과는 나날이 하향이다. 입시성적으로 가타부타하고 싶은 말은 없지만, 수요도 주는데 공급은 더 주니까 내가 진짜 기피직업을 갖고 있나 싶다.


나도 월급에 불만은 많다. 사기업 다니는 친구들한테 연봉 듣고 속상한 적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묻지도 않는다. 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배불리 뭘 하기도 어려운, 애매하고 온건한 나의 월급이여. 뭐든지 숫자로 판단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세상에서 나의 숫자는 어떤 방식으로 평가될까. 나는 나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놈의 교사, 기회만 있으면 관둔다?


이번 연수에 참여하면서 감사한 점이 참 많은데 가장 감사했던 점은 이번 연수를 추진해 주시는 교육청 장학사님과 우리 연수의 현실적인 진행을 맡아주신 숙명여대 관계자분께서 연수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을 너무너무 귀하게 대해주셨다는 점이다. 뭐 하나 불편하지 않게, 당황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게 해 주시려고 나름 빠듯한 예산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셨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까짓것 교사가 뭐라고 이 정도까지. 덕분에 집에 돈이 없어서 사립대 못 간 한도 숙명여대 TESOL과정으로 살짝 풀었고, 하와이 주립대학교 학생증 목에 걸고 학식 먹으면서 유학 체험도 했다.


영어로만 3시간 내내 화상회의를 하던 지난 5월에는 영어 멀미가 나서 관자놀이만 만졌는데 오늘 하루 종일 영어로 수업을 듣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잘 들렸고, 잘 말해서 '내가 어느새 이만큼 와 있구나.' 했다.


하와이 대학교 캠퍼스를 걸을 때, 수업 끝나고 바닷가에서 노을 볼 때, 길거리에서 한국어 간판을 발견했을 때 5-6초씩 짧은 영상을 찍었다. 방학식날 "선생님 방학 때 하와이 초등학생들한테 영어로 수업하고 와."라고 자랑했던 우리 3-4학년 아이들에게 보여줄 하와이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담임도 아니고 그 정도 라포도 없으면서 부러 말했다. 인생이 너무 재밌고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는 어른이 아이들 인생에 여러 명이면 좋겠어서, 그중에 하나가 나였으면 해서 그랬다.


"영어 잘하면 진짜 좋다니까. 해외 갈 때마다 얼마나 재밌는데. 선생님처럼 기회도 많아지고."

"좋겠다. 저는 한 번도 해외 못 가봤어요."

"나도 대학교 때 내 돈으로 처음 가봤어. 잘 커서 자기가 가면 되는 거야. 걱정 말고, 지금은 영어 공부를 해."


그렇게 말해놨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틈틈이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2학기 첫 수업에 잔소리 대신 영어선생님표 하와이 브이로그를 튼다. 영상에서 선생님이 무척 신이 나서 하와이길거리를 둠칫 둠칫 걷는다. 하와이 초등학생들이랑 딱지 치면서 왁자지껄 논다. 하와이 주립대학교에 경복궁을 닮은 건물이 있고, 거기에 심지어 북한에서 건너온 논문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선생님이 영어 공부 열심히 했더니, 교육청에서 공짜로 하와이에 영어 연수 보내줬어. 그래서 영어가 더 좋아졌어. 너네도 영어 공부 재밌게 열심히 해보자~"


받은 만큼만 한다는 것에 대해 그간 틈틈이 곱씹었다. 나도 월급이 100만 원만 더 올랐으면 좋겠다. 근데 그건 그렇고 내가 해내야 한다고 믿는 일에서만큼은 제일 잘하고 싶다. 월급 불평은 불평대로 할 건데, 아이들 가르치는 일만큼은 누구를 데려와도 나만큼은 못 한다는 자부심을 선명히 갖고 싶다. '아마도, 어쩌면, 대충 이 정도면.' 수식어 말고 '나는 잘 가르쳐.' 그런 확고한 자존감을 갖고 싶다.


조금 방심하면 수업 준비 못한 채로 수업 종 치는 건 예사다. 어떤 날엔 오줌 참고 일해도 수업 준비는 퇴근하고 한다. 게다가 초등교사는 십 수명의 초등학생과 예측불가의 학부모(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엄마, 이모, 삼촌 포함)를 매년 바꿔가며 상대하다 보니 변수가 너무 많고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얼마를 받느냐와는 상관없이 잘 해내고 싶다. 이게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인지도 매번 느끼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서도 나는, 온갖 꽃과 나무가 가득한 하와이 주립대학교를 누구보다 신나고 활기차게 누빌 것이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쏙쏙 배워와 내 안에 쌓을 것이다. 지식이야 금방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과 내가 중요한 존재라고 응원해 주는 마음은 내 안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용기와 자존감으로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더 잘 가르쳐보기 위해 또 용을 쓸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아이들 앞에서 인생이 너무 신나서 어쩔 줄 모르겠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세상에 얼마나 멋진 곳이 많을지 기대하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싶다. 이 글도 겁나 신나는 노래를 하와이 호텔 방 가득 틀어놓고 엎드려서 쓴다. 내 발가락은 비트를 타고 있다.




Aloha! 열공하고 갈게요~

기다려라, 우리 이쁜 아이들

2학기부턴 선생님 영어로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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