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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만큼은 돈이 아니어야 하지 않겠나

국외연수보고서

by 김Genie

오늘은 하와이 사립초등학교 Mid-pacific으로 수업 참관을 갔다. 우리 연수의 담임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이스 교수님이 학비가 거의 가장 비싼 학교라고 말씀해 주셨다. 학교에 가는 길 잔디 조경부터 어제 방문하였던 공립 초등학교와 느낌이 달랐다.


미드 퍼시픽 초등학교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로 치면 연구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께서 학교 교육과정에 담긴 비전과 교육철학,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들을 소개해주셨다.


학교의 비전은 ​학생들이 자신감, 적응력, 그리고 진실성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 하였다. 교사들은 학교의 비전과 교육철학을 공유하며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용감한 교육을 실현한다고 하셨다.


소개하는 내용도 좋았지만, 나는 학교를 소개하는 교사의 담담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태도가 더 눈에 담겼다. 나도 연구부장을 한 적이 있는데, 저렇게 해낼 자신이 없다. 학교교육과정에 멋진 말 잔뜩, 내 교실은 교실대로 따로, 다른 선생님들 교실은 잘 모름이기 때문이다. 사립이라 한 학교에 오래 근무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저 근거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교실 수업을 보는 내내는 좀 속상했다. 학비가 비싼 학교라 그런지 어제 봤던 학교와 학급 학생 수는 비슷한데 교실 크기가 거의 3배였다. 우리나라 교실과 비교했을 때도 교실 크기가 압도적으로 넓었다. 5모둠 책상을 놓고도 교실 가운데엔 아이들이 모여 앉을 카펫이 놓여있고, 교실 구석엔 아이들이 누워서 쉴 간이침대까지 있었다. 게다가 모든 교실이 단층이었는데 층고까지 삼각형 모양으로 높아서 마음이 탁 트였다.

층고만 높아도 창의력이 높아진다는데, 인간도 동물이라 자기 영역 확보 안되면 날카로워지던데. 교실에서 앉았다 엎드렸다 누웠다 다 하는 아이들을 보니 무척이나 부럽고 '이게 자본의 맛인가?' 싶었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교사가 아주 차분하게 한 마디만 해도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는 것이다. 가령 한 아이가 쉬는 시간에 밖에서 먹던 과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는데 교사가 말했다.

"과자 언제 다 먹을 거니?"

"지금요.(우걱우걱 먹음)"

"그래, 근데 여기선 안돼. 나가서 먹고 와."

"네.(일어나서 교실 밖으로 나감)"


수학 시간에는 교사가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손을 드니 "응급 상황 아니면 지금은 손 들지 마."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교사의 말을 경청했다. 애기들이 옹기종기 엎드려있는데 친구를 건들거나 수업과 상관없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같이 참관 간 동료교사가 말했다.


"우리나라였으면 우선 교실 좁아서 엎드리지도 못하고, 엎드리면 친구랑 싸우고 난리 나지. 나는 코로나 이후로 짝꿍도 없앴어. 하도 싸워서. 그거 뒤치다꺼리하느라 수업을 못 해."


나도 씁쓸하게 동의했다. 수준 높은 교육은 권위 있는 교사가 열정적일 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번쩍번쩍한 교육정책을 가져와도, 별의별 예산을 다 쏟아부어도 아이들과 학부모가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본적인 배움의 태도도 되어있지 않으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교육과정은 딴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교사는 열정적이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존중받아야 열정적일 수 있는 건지, 열정적인 교사가 권위를 인정받는 건지 선후관계는 모르겠다.(아니면 높은 학비와 교사 월급?) 어쨌건 교사는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이 어떤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수준 높은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지치지도 않고 나아가야 한다.


교사의 권위와 열정, 이 두 마리 토끼가 다 잡혀야 우리가 바라는 멋진 교육과 진실된 배움이 일어난다.


미드 퍼시픽 교사들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모든 게 부러웠다. 교사의 말을 잘 따르는 아이들과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을 내내 밝은 표정으로 어려움 없이 실현해 가는 교사들, 넓고 높은 교실과 푸른 운동장. 모든 교실에 붙어있던 교육 철학까지. 이 학교에 고용되어서 내가 해보고 싶은 교육을 마구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 한구석이 답답한 기분이다. 좁은 교실에 빽빽이 모여 앉은 아이들, 괜히 지레 겁을 먹고 슬금슬금 지도를 포기하게 되는 순간들, 교권이 뭔지도 모르겠는 요즘의 현실. 그런 것들이 떠올라서 부러움 속에서 속이 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삐딱한 마음을 먹어본다. 이렇게 훌륭한 교육과 시설은 1년에 몇천만 원씩 내고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아이들만 누릴 일이냐고. 까짓 거 내가 좀 더 움직이고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건 힘껏 바꿔보겠다고. 시설이랑 예산이랑 교실 크기는 좀 많이 차이 나겠지만, 가끔 교사 지시 안 따르고 교권 넘보는 학부모 때문에 속상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좋다 하는 교육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못 해줄게 뭐냐고. 나도 한 교육한다고.


세상이 다 돈이지만, 교육만큼은 돈이 아니어야 하지 않겠나. 돈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겠나.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아주 삐딱선을 탔다.


어쩌면 배알이 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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