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어교육의 재개념화

국외연수보고서

by 김Genie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전담교사가 한두 과목을 가르치면 나머지 전 과목을 내가 지도하곤 했다. 때문에 영어 수업은 지난 3년간의 경력이 전부다. 항상 영어 전담 교사가 있는 학교에서만 근무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짧은 경력과 OPIc 점수, 그리고 연수 지원서에 썼던 자기소개서 덕분에 하와이로 '영어교사 심화 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다.


사람은 보는 대로 믿고 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영어 관련 강의를 들어볼 기회가 교육대학교 이후로 없었으니, 교과서 커리큘럼대로 가르치는 게 곧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넘치는 영어 교과서 자료들을 꼼꼼하게 찾아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영어 교육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하와이 연수에서 다양한 영어 지도 관련 수업들을 들으며 내 생각이 완전히 무너지고 재정립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가장 마음을 흔들었던 건, 너무 당연해서 말하기조차 민망한 이 한 문장이었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것.


그동안 나는 영어를 마치 수행평가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외우고 정확하게 말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췄으니 말이다. 물론 보람도 있었고 아이들의 실력이 늘긴 했지만, 그게 좋은 영어 교육관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알게 되었을 때 얼굴이 달아오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처럼, 하와이에서 수업을 듣는 내내 그런 감정이 자꾸만 밀려왔다.


특히 말하기, 쓰기 수업에서 교수님들은 아이들이 '틀리게 두라'고, 정확히는 '즐기게 하라'라고 엄청나게 강조했다. 틀려도 괜찮으니,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라고. 심지어 현지 학교 수업을 참관했을 때, 모국어인 영어를 쓰는 중학생들도 맞춤법을 틀리는 것을 보면서, '아니, 틀리면 좀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어를 '배운다'는 개념을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교과서에 정해진 성취기준을 달성하고, 단원 끝마다 시험으로 도달 여부를 확인하려 들었으니.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공부'로만 가르쳐왔다.


재개념화의 시작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다짐을 행동으로 옮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지금 교과서가 가르치라고 하는 핵심 표현을 가져와 교과서를 아예 무시한 채 나만의 영어 교육을 시도하는 중이다. 1학기 때는 교과서 순서대로 '핵심 표현 듣기-말하기-읽기/쓰기-단원 돌아보기'로 매 단원 4차시를 할애했다면, 2학기 때는 '핵심 표현으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재미있게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2학기 첫 수업에 아이들에게 하와이 초등학생들에게 딱지치기를 가르쳐주는 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아이들에게 '영어 즐기자! 도전하자!' 말하려고 결심해 놓고서는 속으로 '애들 중에 내가 틀리게 말하는 거 알아채는 애들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럴 때 보면 나 참 위선적이다. 내가 배워온 영어가 바로 그런 거였으니까. 하와이 아이들과 영어로 소통하며 딱지치기하고, 소다팝 춤을 같이 추는 영상을 보여주며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영어 잘하려고 매일 영어 유튜브 보고 챗GPT랑 영어 대화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영어로 소통하니까 너무 재미있었어."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하와이 중학생들도 맞춤법을 틀리는데, 내가 너희한테 받아쓰기만 시키고 계속 외우게 하면서 혹시 위축되게 한 것 같아 미안해." 우리 애들 기 살려주고 싶어서 호들갑을 떨며 함께 다짐했다. 2학기에는 즐기면서 도전해 보자고.


새로운 시도, 새로운 변화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Gimkit'이라는 학습 게임 사이트를 활용해 요일 단어를 재미있게 외워보는 일이었다. 아이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눈싸움 게임을 할 때 영어 퀴즈를 풀어야 눈덩이를 모을 수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다.

요일 단어를 외운 뒤에는 TBLT(Task-Based Language Teaching)로 실생활과 관련된 대화 상황에서 재미있게 사용하게 하거나. 역할극을 시켜보거나, 요일별로 하고 싶은 일 그림을 그려보며 자유롭게 대화하는 활동을 해볼까 한다. 재미있게 가르쳐보고자 마음을 먹으니 수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무척이나 당연한 걸 너무 오래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부디 이번 연수를 계기로 내가 영어를 훨씬 더 잘 가르치는 교사로 거듭났기를 바란다. 이 마음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발전해 가기를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응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하와이 연수를 다녀왔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놀러 갔네' 하는 농담을 건네곤 한다. 교사 해외연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예산을 줄이는 추세라고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한 이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이 작은 경험이 나를 바꾸고, 우리 교사들을 바꾸고, 결국 더 나은 교육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연수를 통해 성장한 만큼 교사로 살면서 두고두고 아이들에게 돌려주겠다.


더 많은 교사들이 이렇게 좋은 연수를 통해 더 멋진 교사들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keyword
김Genie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944
매거진의 이전글교육만큼은 돈이 아니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