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협상해 본 적이 없다. 나라에서 정해진대로 따박따박 연봉을 올리는 철밥통이라 고용주랑 협상할 일도 없었고, 고객님들(초등학생)은 줄곤 있지만 존재하기에 일거리를 구해올 일도 없었다. 하여 내게 오는 이메일들은 부킹닷컴 특가 소식이나 지금부터 살 뺄 타이밍이라고 협박하는 광고 같은 거다.
오줌 묻은 담벼락 같은 이메일함을 가졌음에도 이슬아 작가의 무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라는 책을 샀다. 이슬아 작가를 오랫동안 흠모해 왔기에, 허풍 잘 안 치던 그녀가 꽤나 거창한 제목으로 책을 냈기에 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녀의 스타성인가 싶기도 하다.
그녀의 인생은 이메일을 통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글을 한 달에 만 원씩 내고 사줄 고객을 스스로 영입했고, 매일 밤 한 편에 500원인 글을 열심히 만들어 메일 창에 첨부하여 전송. 보내고 나면 후기든 비난이든 불평이든 답장 메일이 오곤 했고, 그녀는 성실하게 메일에 답했다.
그녀의 놀랍도록 참신한 글 직거래는 메가히트를 쳤고, 메일로 보냈던 글을 모아 출간한 책 '일간 이슬아'도 독립출판서적 1위를 기록한 걸로 안다. 그녀는 삽시간에 유명 작가가 되었고, 그녀를 섭외하고자 하는 메일도 쏟아졌을 테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이메일을 주고받아왔는지 책으로 알려주었다. 제목은 이렇게, 내용은 요렇게. 섭외는 이렇게, 거절은 저렇게. 복붙 하지 말고, 받는 이에 대한 애정을 담아서. 이름 틀리지 말고. 그런 팁들이 에세이인 척 담겨 있다.
나는 킬킬거리거나 힝 하면서 읽다가 문득, 내가 이메일로 섭외를 시도했고, 무참히 실패했음을 떠올렸다. 그때 6학년 담임이었고, 놀랍게도 우리 반 학생은 3명이었다(지역 소멸이 이렇게나 무섭다). 나와 세 명의 아이들은 충주교육지원청 학생사회참여 목적 사업비 100만 원을 따왔고, 유명 유튜버를 섭외하여 장애 인식 개선을 주제로 마을 강연을 열어보기로 계획했다.
우선 우리가 섭외하고 싶은 유명 유튜버 목록을 추렸다. 가진 것에 비해 눈이 높았던 우리는 10만 구독자 밑으로는 쳐다도 안 봤다. 그렇게 골랐던 유튜버들이 다섯 명 정도였다.
그다음엔 섭외 이메일을 작성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 열심히 쓰는 동안 잔소리를 했다. 초등학교 수업 시수라는 게 참 야박하고 팍팍하여 섭외 메일 쓰는 데 한 시간을 넘게 쓰고 싶지 않았다. 영어는 언제 하고, 수학은 언제 해 그럼.
아이들이 섭외 이메일 초안을 써왔고 6학년답게 아무도 섭외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기소개도 좀 더 구체적으로 하라고, 우리가 줄 수 있는 돈도 정확히 쓰라고,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대상으로 할 건지도 더 생각해 보라고 여러모로 지적하고 비판했다. 그러나 나도 섭외 경험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나는 선생이고, 글도 좀 더 써봤으니까 나름 자신 있게 지도했다.
아이들이 최최최최종안을 들고 왔고, 그럼에도 성에 안 차서 내가 많이 다듬었다. 이슬아 작가가 하지 말라고 한 짓, '안녕하세요, 000 유투버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에서 000만 바꿔서 5명의 유튜버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이들이 메일을 보내자마자 '아 제발, 섭외되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담담하게 기다려보고, 결과를 받아들이자."라고 어른인 척 말했지만 실은 내가 더 떨렸다. 그리고 아무도 섭외에 응하지 않았다. 읽고 씹거나,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우리가 줄 수 있는 강의비가 고작 그거여서 섭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냉혹한 자본주의' 그러면서. 그런데 이슬아 작가의 이메일에 대한 조언을 읽으면서는 어쩌면 교사인 나의 역량이 부족하여 아이들과 다 같이 실패한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아 작가가 하지 말라는 짓 너무 많이 했고, 하라고 하는 거 많이 안 했다. 지도교사의 역량 부족이었다.
섭외에 성공했을 우리를 상상했다. 유명 유튜버가 그 시골 마을에 와서 강연을 하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홍보하고 일 키우는 거 좋아하는 내가 인근 초등학교에 홍보 공문도 보내고. 우리 애들 어깨뽕 잔뜩 들어가서 칭찬 엄청 많이 받고 그런 순간들이 머리를 스쳤다. 대자로 누워서 책을 읽다가 옆으로 돌아누워 좀 웅크렸다. 미안해서.
그다음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책을 좀 열심히 읽었다. 언젠가 또 아이들과 이메일로 섭외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좀 더 잘해보고 싶어서. 어쩌면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일 수도 있으니까.
이메일 쓰기에 관심이 없더라도 재밌는 책입니다.
역시 이슬아는 이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