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장 둘러보기, 그리고 베트남 가정식 만들기 1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기온이 40도를 웃돌며 후텁지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불볕더위도 더위지만, 동남아 특유의 습기 많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집 앞 광장에 나가는 것도 망설여질 정도로 힘들었는데, 며칠 만에 제법 아침저녁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하지만! 작년에 경험했던 바에 의하면 이런 날씨가 길지 않을 알기에 요즘 나는 이 황금 같은 날씨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마음이 급하다. 어디라도 실컷 걸어 다니고, 그동안 날씨 때문에 미뤄뒀던 곳도 바삐 다녀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시장'이다.
일 년에 거의 9,10개월을 무더운 날씨 속에서 살아선지, 베트남 사람들은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6시도 안 된 시간에도 광장엔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거리엔 출근을 하는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어른들의 출근 시간이 빠르다 보니, 아이들의 등교시간도 빠르다.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만 해도 7시 30분도 안 되어서 스쿨버스를 타는데, (베트남 로컬 학교는 6시 50분에 차를 타기도 한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 베트남 아줌마들의 손엔 이미 시장에서 사 온 물건들이 들려있다. 그렇다고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아침 준비를 위해, 혹은 딱 하루 먹을 양만큼만 산다. 아마도 집에서 밥을 잘해 먹지 않기도 하고, 날이 더워서 음식이 쉽게 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의 하루는 거의 매일 시장을 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엔 대형마트나 크고 작은 슈퍼마켓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들은 아직도 시장을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동네 곳곳에 크고 작은 시장이 많다.
나도 가끔 그들처럼 아이들이 버스에 타자마자 집 앞에 있는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는데, 여기엔 큰 난관이 있다. 바로 오토바이!
우리 아파트 앞의 시장은 새벽시장으로, 대로 옆 작은 강둑을 따라 길게 장이 서는데 시장에 가려면 오토바이 가득한 도로를 몇 개 건너야 한다. 일단 큰 숨을 몇 번 내쉰 후, 좌우를 살펴 최대한 오토바이가 적을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당황하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건너는 것이 팁!
어찌어찌 시장에 도착했을 땐 8시도 안 된 시간. 하지만 이미 좋은 물건은 다 팔린 상태다. 6시 이전으로는 가 본 적이 없어서 문을 언제 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통 9시 정도면 자연스레 시장이 한산해진다. 사는 사람도 딱 그날 필요한 양만큼만 사기 때문에 파는 사람 또한, 딱 오전에 팔 수 있는 만큼만 오토바이에 싣고 와 물건을 다 팔면 문을 닫는다. 시장 안은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사는 사람, 그들을 상대로 쌀국수나 간단한 찹쌀밥을 파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베트남은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들은 출근 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시장에 들러 쌀국수를 먹기도 하고, 아침이나 점심에 먹을 연잎에 싼 찹쌀밥을 사 갖고 가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지저분할 수 있으나, 신선 도면에선 어느 대형시장도 이 곳을 따라올 수 없다.
시장에 처음 왔던 날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이 시장 곳곳에 살아있는 닭과 오리가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저걸 그대로 사 가는 걸까' 한참 궁금해하던 차 한 손님이 베트남어로 뭐라 말하자 (아마도 그걸 사겠다, 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오리를 죽여 뜨거운 물에 담그더니 털을 뽑아 주는 것이었다.
좀 잔인하긴 했지만, 아무튼 현장에서 바로 살아있는 오리를 잡아주는 것만큼 신선한 것이 있을까. 게다가 신선하고 좋은 물건일수록 더 빨리 판매가 되기 때문에 상인들은 좋은 물건을 판매하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주로 찾는 과일집과 채소가게가 있다.) 좋은 물건에 회전율이 높아 재고는 없고, 고기는 현장에서 갓 잡아줄 만큼 신선한 데다 가격 또한 보통 10000 vnd (대략 500원 정도) 정도 저렴해, 베트남 사람들에게 '재래시장 물건이 대형마트보다 싸고 좋다'라는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소, 돼지, 정육부터 주문 즉시 잡을 수 있도록 준비된 오리, 닭과 새우, 조개 같은 해산물은 물론 과일, 채소까지 없는 식재료가 없고, 꽁안(경찰)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순찰을 돌기 때문에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첫인상과는 달리 크게 위험하지 않다.
물건은 주로 1킬로그램 단위로 판매를 하기도 하고, 원하는 만큼도 판매한다.
먼저, 1 킬로그램 당 가격을 물어본 후, (1킬로에 얼마입니까? : 1 cân bao nhiêu tiền?... 못 껀 바오 뉴 티엔?) 필요한 양만큼 저울에 물건을 담아놓으면 상인들이 가격을 말해준다.
(처음 시장에 왔을 때만 해도 지폐 몇 장을 보여주면 아줌마가 알아서 가져갔는데, 이젠 가격 정도는 물어보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
나는 오늘 과일과 갈아먹을 용으로 쓸 당근과 오이를 샀다.
(베트남에서 파인애플을 사면 톱니바퀴 모양으로 깎아주는데, 오늘은 그 파인애플 아줌마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베트남 파인애플은 특히, 정말 맛있다.)
오토바이가 없는 나는 이제 오늘 산 물건을 캐리어에 담아 또다시 큰 난관을 뚫고 돌아가야 한다.
비록 여러 여건상, 베트남 사람들처럼 매일 시장에 오지는 못하지만, 신선한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베트남 시장은 올 때마다 내 캐리어에 질 좋은 물건뿐만 아니라, 활기찬 기운과 좋은 기분까지 덤으로 가득 안겨준다.
"자~ 오랜만에 시장 다녀온 기념으로 베트남 가정식 하나 만들어볼까요?"
오늘의 요리는... Mực xào tỏi! (묵 싸오 또이, 오징어 마늘 볶음?)
1. 깨끗이 씻은 오징어에 빗살 모양으로 칼집을 낸 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는다.
2. 양파, 당근, 쪽파 등의 채소도 깨끗이 씻어 손가락 길이만큼 썰어서 준비하는데, 이 음식에서 꼭 빠지지 말아야 것이 있다.
cần tây (껀떠이)라고 부르는 향채소다.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나라 말로는 '샐러리'라는데, 한국에서 내가 흔히 먹던 샐러리보다는 줄기도 많이 가늘고 잎도 많고, 향은 깻잎보다도 엄청 강하다. 베트남 음식의 대부분엔 이 채소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아마 베트남 음식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은 이 채소가 한몫하는 것 같다.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향을 생각한다면, 미나리나 참나물을 넣어서 볶아도 될 듯하다... 100% 내 생각이다) -> "이제 재료 준비 끝"
3. 달군 팬에 기름과 마늘을 듬뿍 넣어 살살 볶다가 마늘향이 올라오면 (살짝 매콤하게 먹고 싶다면 이때 말린 고추를 넣어 같이 향을 내도 될 듯하다.) 오징어를 빠르게 볶은 후, 오징어가 살짝 익었다 싶을 때 다른 채소를 부어 센 불에서 빠르게 익힌다. 그리고 마지막에 껀떠이와 간장, 굴소스로 마무리하면 끝.
(꽌안응온 같은 음식점에서는 국물도 없고 색깔도 조금 더 진했는데, 보통 베트남 집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 먹는다고 한다.)
"이거 뭐 우리나라 간장 오징어 볶음 아냐?"라고 묻는다면, 맞다. ^^ 이 음식 역시, 겉보기에도 그렇고 만드는 방법 또한 우리나라 음식인, 오징어 볶음이랑 거의 비슷하다. 뭐 굳이 베트남 식을 찾자면, 껀떠이라는 채소 덕에 베트남 특유의 향이 난다는 것~ 정도?!
그래도 어디랴~ 하노이는 호찌민이나 여타 지역과는 다르게 바다와 떨어진 북부지방이라 해산물 요리가 많이 발달하지 않아 그동안은 나도 주로 돼지고기나 닭고기 요리를 많이 해 먹었는데, 오랜만에 깔끔하면서도 밥반찬으로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베트남의 해산물 가정식 요리를 배운 것만으로도 오늘의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