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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ug 16. 2022

'애플'에서 스쿠터를 도난당했어요

"엄마. 정말 어이없는 일이 생겼어요."

"왜 무슨 일인데?" (정말이지 간이 콩알만 해졌다)

"애플에 와서 헤드폰 구경하고 나왔는데 스쿠터가 없어요. 설마 해서 4번이나 건물을 돌았는데, 없어요. 어이없지 않아요?"(난 어이없는 게 아니라 화가 나는데?.. 참으며)

"열쇠로 잠그지 않았어?"

"락했죠. 당연히.."

"근데 어떻게 없어져?"

"그러니까 어이가 없다고요."

"말도 안 돼. 네가 깜박하고 그냥 놓고 들어간 거 아냐?"(난 100% 확신에 차서 내 딸의 말을 믿지 못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워싱턴 DC 백악관 옆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딸이 국회의사당 근처에 있는 애플사에 들렀다. 새로 나온 헤드폰을 둘러보기 위해 자전거와 스쿠터를 보관하는 장소에 개인 스쿠터를 튼튼한 잠금장치로 걸어놓고 애플에 들어갔다가 30분 정도 구경을 하고 나왔는데 그렇게 튼튼하게 잠가놓은 커다란 스쿠터가 온데간데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정차해 놓은 것도 아니고 애플에서 지정한 보관 장소에 쇠줄로 락을 걸어놓았기 때문에 단순히 분실될 일은 아니고 절단기 같은 것으로 단시간에 쇠줄을 절단하고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을텐데 한적한 곳도 아니고 사람들의 통행이 잦고 도심에 있어서 설마 이런 곳에서 도난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라 나또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도심 한복판에 단독 건물로 작은 상점도 아니고 그래도 번쩍이는 세계 제1의 애플 샾이 아니던가?


애플에 다시 들어가 도난을 당했다고 말했지만 자기의 일이 아니라며 오히려 영업이 끝났으니 들어올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 거기에 직접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좋겠다는 조언까지 곁들였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311 걸었단다. 난생처음으로 경찰에 전화를 했건만 지금은 바쁘니 기다리라고...  시간을 영업시간 끝난 애플 정문 앞에서 기다리다 지쳐서  앞으로 온다는 말에 다시  앞에서  시간을 기다리고... 끝내 아주 '바쁜' 경찰을 만나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갔다는 어이없는 스토리를 전해 들었다.


이틀 뒤에 경찰이 전화가 와서 기록을 남기겠냐며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에 찾을 수는 있겠냐는 기대 없는 물음에 역시나 기대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혹시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범인을 검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반문을 했단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매뉴얼에 힘이 빠진 아시안으로서 그래도 자신의 목소리가 한 번이라도 전해지기를 기대한 딸의 가슴에 경찰의 말은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말없는 한숨 소리로 내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자, 이쯤에서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의 치안은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범죄율 검거나 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 등 딱 부러지게 치안만을 위한 순위가 나온다는 건 기준이나 그 방향성이 달라 한마디로 정의해서 순위를 매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치안 즉 한밤중에 밤거리를 아무런 걱정 없이 특히 여자가 걸을 수 있는 나라가 한국 이외에 한 두 나라 정도 있다는 정보는 얼핏 들어서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한국은 밤거리 안전뿐만 아니라 공공장소 어디든 도난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오래전에 없어진 일이 되었다. 이는 한 발짝 건너 CCTV가 보이지 않는 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심리적 이유라고 들 말한다.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개인의 집안 곳곳에도 카메라를 설치하는 추세지만 한국처럼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것은 꼭 CCTV가 경범죄를 포함해 전체 범죄율을 줄이지는 못한다고 본다.


지금 미국은 20초 만에 4인조 강도가 보석가게를 털어 250만 불어치의 금품을 훔쳐 갔다는 뉴스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고 길거리에서 가방을 그냥 낚아채 달아나는 일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어 도심지를 걸을 때 가방을 앞으로 메고 손으로 가방을 부여안으라는 경고를 듣는다. 미국의 일만이 아니라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예전엔 한국에 절도범이 많아 앉아서 코 베간다는 말을 종종 썼는데 이제는 한국이 아닌 다른 외국에서 들어야 할 말이 되었다.


한국은 길거리에 돈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내 돈이 아니니 주워서 내가 쓰는 건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돈을 주워서 다른 사람에게 찾아주려는 의도로 주웠다 하더라도 일단 법에 접촉되는 일이라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습득해 본인이 소유하거나 타인에게 주었을 때 '점유이탈물 횡령죄'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고 만약 습득한 재물을 사용하였을 경우 절도죄가 성립되어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연히 주운 돈을 줍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카페에서 오랫동안 지갑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손을 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왜,


미국의 수도 그것도 백악관 근처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일이 되었을까? 말이 백악관이고 말이 국회의사당이지 한국처럼 여의도의 국회를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물론 그럴듯한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로 그럴듯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그 그럴듯한 포장에 비해 워낙 오래된 도시라 실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차 시설이나 주변 환경은 형편없다.


오죽하면 워싱턴 DC에는 대통령과 거지만 산다는 말이 있을까? 차가 있어도 주차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일단 오래된 도시라 노선 찾기가 쉽지 않고 시설 자체가 낙후되어 깨끗하지 않고 위험하다. 대중교통도 자유롭지 않은 데다, 주변 환경도 좋지 않아 도난이나 범죄로 인해 자유롭지 않다는 게 미국의 수도, 그것도 정치 1번지의 현주소다.


얼마 전에 렌트로 살던 집에서 딸아이의 옷 가방 몇 개가 분실된 일이 있었다. 분실신고를 받은 레지던스 직원의 태도는 가히 놀랄만한데 '나도 모르는데?' 한마디면 끝이다. 한국처럼 인터넷상에 직원에게 고객이 이런 식의 대우를 받았다고 떠들면 어떻게 될까? 당장 벌 때처럼 모여 직원 해고는 물론 윗사람이 머리 숙여 사과한다는 사과문 정도는 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태도는 며칠 뒤 물건을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키가 아직도 나에게 있는데도 물건은 사라지고 청소하면서 버린 거 같다는 말이 돌아온 걸 보면 한국의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말은 개나 줘버려야 하는 말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이유로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겉으로 표현하는 걸 꺼리는 미국인들이라 생각되는 이 지점에 왜 절도나 강도 같은 일들이 빈번하고 검거를 하는 비율도 이렇게 낮을까?


첫째는 바로 교육 시스템의 다름이 숨겨져 있다.


한국은 집단주의적 사고의 일종으로 '너 잘났니? 나도 잘났다' 식의 누구나 잘살기를 희망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평균적인 교육이 다른 나라에 비해 우월하다. 이는 어릴 때부터 교육열이 부추겨준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하는데 너도나도 교육만이 경쟁에서 살길이라는 치열한 경쟁의식에서 나온 효과라고 본다. 청소인력의 지원자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인재라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미국은 상위 5% 정도만이 이 사회를 이끌고 간다고 봐야 한다. 잘하는 사람을 열심히 키우고 잘하지 못하는 나머지 사람은 그냥 따라가는 사람으로 만족한다. 100%를 끌고 가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래서인지 95%는 자신의 일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즉 남의 일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살만하기 때문에 구태여 악착같이 남의 비유를 모두 받들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재벌이나 연예인의 삶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부분 만족한다.


두 번째는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문화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폐해도 많지만 이런 경우엔 좋은 방향으로 적용되었다고 본다. 남의 이목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쁜 일을 했을 경우 결과물에 관한 일 또한 나뿐 아니라 가족까지 연결되어 확대된 이미지까지를 생각하는 문화다. 먼 친척의 딸이 서울대를 가면 나 또한 그 집안의 일원으로 나의 레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의 가정은 그렇지 않다. 내 아이가 하버드를 가도 아이의 인생이지 나의 인생 전반의 성공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기에 나의 일이 가족 전체로 확대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미국의 교육은 정반대다.


미국은 적어도 보여주기식의 교육이 아니다.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욕을 하더라도 앞에서는 절대적 신뢰가 가능한 한국에 비해 미국은 내가 아니면 아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나의 일이 아니면 절대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나에게 주어진 일에만 할 수 있는 일까지만 하면 만족한다는 한마디로 나 중심적 사고가 팽배하다. 그러니까 애플사에서도 영업시간이 끝났으니 고객이 물건을 분실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고 경찰 또한 신고를 받았지만 바쁘면 출동을 못 나가고 솔직하게 찾지 못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숨은 경쟁이 없진 않다. 하지만 면적 대비 인구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타인에 관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고 사회적 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는 지역일수록 사람끼리 경쟁적으로 살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경쟁의식이나 치열함보다는 행복지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너의 잘남은 내 일이 아니고 집단으로 남의 것에 대한 욕망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기에 집단으로 움직여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매뉴얼을 일사불란하게 보고 배우는 일을 충실히 따라야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투철한 한국은 모든 게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가는 반면, 미국 같은 나라는 스스로 나에게 만족하면 그뿐, 꼭 다 같이 함께해야 한다는 의식이 없어 제도적으로 변화하는 데에 따르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그런 교육 탓에 CCTV가 있는 곳에서도 눈만 가리고도 버젓이 물건을 훔치고 달아난다 해도 검거율이 낮기에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이 세계적으로는 완전한 선진국이지만 개개인의 사회적 신뢰도까지 높다고는 볼 수 없다.


화이트칼라만 다닐 거 같은 워싱턴 DC 근처의 도난이나 범죄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아시안으로 이민자의 딸로 대망의 미국 국회로 출근한다고 좋아했던 내 머리에 스쿠터의 분실로 꼬마전구가 순간 꺼져버린 사건이었다. 아시안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는 뉴욕으로 가겠다는 딸을 뜯어말리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나저나 스쿠터를 또 사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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