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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Oct 02. 2021

잠 오는 아들과 새촙은 딸

첫 번째 말모이

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고 얼만 안된 어느 주말 오후, 아들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엄마, 서울에는 잠 온다는 말을 안 쓴대요."

"그럼 잠 올 때는 뭐라 하는데?"

"졸리다고 한데요."

"졸리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근데 잠 올 때 아, 잠 온다 해야지 아, 졸리다 하는 건 뭔가 부자연스러운 거 같다."

아들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졸리다는 말은 TV 드라마에서나 들은 말이지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낮이든 밤이든 잠이 오면, "잠 온다. 잘란다."라고 했다. 그런데 서울에 간 아들은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잠 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단다. 그래서 가만 들어보니 다들 '졸리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소소한 차이가 재미있었던지 아들은 집에서 잠이 올 때면 "잠 이즈 커밍"이라며 영어로 직역하여 우스개를 한다. 잠 이즈 커밍(Jam is coming)이라니? 기발한 우스개에 한참을 웃었다. 



요새는 TV에서 사투리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웬만한 사투리 단어는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아래와 같은 것들일 것이다. 

-정구지 - 부추

-새그럽다 - 시다

-데파다 - 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에게서 들었던 사투리 말들을 말하면 우리 집 아이들조차  못 알아듣는다.

방 청소를 하다 화가 나서 큰소리로 말했다. 

"비름빡에 멀꺼디도 좀 치우고 날아댕기는 벌거지에 약도 좀 치라. 에이 더러버라."


아이들이 눈이 동그래진다. 엄마가 무슨 외계어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눈초리이다.

"아니, 벽에 붙은 머리카락도 좀 치우고 날아다니는 벌레도 좀 잡으라고. 더럽다고. 말을 못 알아먹노?"

"엄마, 그리 말하면 여기 사람들 아무도 못 알아먹는다. 경상도 살았던 나도 헷갈리네. 좀 알아듣게 대화를 합시다."

다 큰 아이들이 엄마의 촌스러운 말투를 지적하니 나는 자못 기분이 나빴다. 



"가스나 엥가히 새촙네."

잘 차려입고 알바 면접을 보러 나가는 딸애에게 내가 한마디 던졌다. 

딸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엄마, 새촙다는 말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근데 딴 데가서 새촙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못 알아들을걸?"라고 했다. 

딸아이의 말을 들은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이고 요 가쓰나, 억수로 새촙네. 누집 딸래미고?"라는 동네 어르신의 말을 자주 듣고 살았는데 그러고 보니 요 근래 몇 년은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내가 이미 새촙을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정말 더 이상 새촙지가 않아서인지, 둘 다 해당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지기도 한다. 뭐 어쩌랴! 난 이미 50을 넘긴 아줌마고 새촙다는 말은 주로 어린아이에게 쓰는 말이니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지지배, 참 귀엽고 예쁘네" 

내가 면접 가는 딸아이에게 한 말이 바로 이 말의 사투리 버전이었다. 

내가 어릴 때 들었다는 말은 "아이고 요 여자애 참 귀엽고 예쁘네. 누구 집 딸인가?"이다. 


사실, 새촙다는 말의 뉘앙스를 단순히 귀엽고 예쁘장하네로 표현하려니 성에 차지 않는다. 

새촙다는 느낌은 귀엽고 예쁘장하긴 하나 약간 깍쟁이 같고 새침데기 같은 느낌이 공존한 귀염과 예쁨이다. 주로 어린 여자아이에게 많이 쓴다. 성인 여자더러 새촙다는 잘 쓰지 않는다. 



오늘 나는 짐 오는 아들에게 벌거지 안 잡는다고 잔소리를 하고 면접 가는 딸에게 새촙다고 칭찬을 했다. 내일은 아들에게도 사랑이 듬뿍 담긴 칭찬의 말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칭찬거리가 뭐가 있나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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