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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수사대-시즌1 도시의 그림자

3부: 지하철 7호선의 여자

by 공감디렉터J


Chapter 1: 속삭이는 목격담

도시의 혈관인 지하철.

매일 수백만 명의 익명이 스쳐 지나가는 이 거대한 공간에, 새로운 괴담이 피어나고 있었다.

2024년 10월 중순.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괴담 아카이브'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목격담] 7호선 막차에서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여자를 보셨나요?

작성자: 야근러

어제 밤 11시 40분쯤, 건대입구역에서 상봉역 가는 열차 안이었어요. 텅 빈 객차 끝자리에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창백한 얼굴로 계속 중얼거리더라고요. "살려주세요... 제발..." 소름 돋아서 다른 칸으로 갔는데, 다음 역에서 내리려고 보니 그 여자가 사라졌어요. 저만 본 건가요?


댓글은 폭발적으로 달렸다.

'저도 봤어요! 지난주 금요일 밤에. 이어폰 끼고 있어서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그 여자, 자세히 보면 발이 없다던데요?'

'7호선 공사하다가 죽은 인부의 원혼이라는 말도 있어요.'

'친구가 그 여자한테 말 걸었다가 3일 동안 열이 안 떨어졌대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괴담은 스마트폰을 타고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은근히 그 여자를 마주치길 기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7호선 귀신'은 어느새 도시의 새로운 가십이 되어 있었다.

'미스터리 수사대'에게 의뢰를 해온 사람은 7호선의 기관사 김태식이었다. 그는 피로가 짙게 깔린 얼굴로 말했다.


"귀신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동료들 몇몇은 헛것을 보고 운행 중에 급제동을 밟을 뻔했어요. 밤마다 불안해서 일을 못 하겠습니다. 제발... 이 소문이 그냥 헛소리라는 것만이라도 증명해주십시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Chapter 2: 흩어진 조각들

"전형적인 도시괴담의 확산 패턴이군요."

도시전설 연구가 박유진이 수집한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목격담이 시작된 시점, 장소, 여자의 인상착의까지. 수십 개의 파편화된 정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어요. 목격담이 특정 요일과 시간대에 집중된다는 겁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밤 11시 이후. 그리고 모두 건대입구역에서 중계역 사이 구간이에요."


박유진이 지도 위에 빨간 점들을 찍어나갔다. 점들은 일정한 패턴을 그렸다.

"마치 누군가의 퇴근길 동선처럼 규칙적이죠."


박유진이 현장에서 '사실'의 조각들을 모으는 동안, 심리학자 오민재는 '마음'의 흔적을 쫓았다.

그는 목격담을 올린 사람들을 수소문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목격자들은 공포와 함께 심한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을 외면한 것처럼요."


오민재가 노트를 펼쳤다.

"한 대학생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냥 커플 싸움인 줄 알았어요. 엮이기 싫어서... 그냥 못 본 척했어요.' 또 다른 직장인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무도 신경 안 쓰길래 저도 그냥...'이라고 했습니다."


강태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커플 싸움이라고요?"


그 순간, 박유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찾았어요!"

그녀는 1년 전, 지역 맘카페에 올라왔다가 삭제된 게시글 하나를 복원해냈다.


[도와주세요] 7호선에서 이상한 커플을 봐요.

작성자: 튼튼맘

거의 매주 수요일, 금요일 밤마다 보는 것 같아요. 덩치 큰 남자가 젊은 여자를 붙잡고 있는데, 여자는 울면서 내리려는데 남자가 못 내리게 막고, 계속 귓가에 뭐라고 속삭여요. 여자는 거의 공포에 질린 표정인데... 주변 사람들은 다들 못 본 척하네요.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맞죠?


게시글 아래에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요즘 세상 무서우니 괜히 끼어들지 마세요.'

'부부 싸움일 수도 있잖아요. 괜히 오지랖 부렸다가 고소당해요.'

'연인 간의 일에 왜 끼어들려고 하세요?'


그리고 며칠 뒤, 게시글은 작성자에 의해 삭제되었다.

오민재가 나지막이 말했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군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줄어드는 현상. 모두가 '누군가는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겁니다."


강태우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7호선 귀신'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원혼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익명의 시선 속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던 한 여자의 실제 절규였던 거죠."


Chapter 3: 침묵의 대가

팀은 경찰 기록을 뒤졌다. 그리고 1년 전, 스토킹으로 수차례 신고했지만 '연인 간의 다툼'으로 처리되었던 사건 파일을 찾아냈다.

피해자의 이름은 한지민, 광고회사 디자이너.

그녀의 주소지와 직장을 파악한 결과, 이동 경로는 괴담의 동선과 정확히 일치했다.

건대입구역 인근 회사에서 퇴근해 중계역 인근 자취방으로 향하는 길.

가해자는 헤어진 남자친구 박민수였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지민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에서 기다렸다가 같은 칸에 탔다. 그리고 그녀를 위협했다.

"다시 만나자. 안 그러면 네 가족들한테 찾아갈 거야."

"네가 날 떠난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

"사람들이 다 보고 있잖아. 소리 지르면 네가 미친년 되는 거야."


그녀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지하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고쳐 끼거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침묵은 가해자에게는 암묵적인 동의였고, 피해자에게는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는 절망의 증거였다.

결국 한지민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도 연락을 끊은 채.


Chapter 4: 살아있는 귀신

강태우와 오민재는 수소문 끝에 성북구의 한 여성 보호 쉼터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한지민은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대인기피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지하철 괴담 속 여자의 속삭임처럼 희미했다.

"그 사람이 제 팔을 붙잡고 협박할 때, 주변에 수십 명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저를 보지 않았어요. 아니, 봤지만 못 본 척했어요. 그냥 한 사람이라도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어봐 줬더라면..."


그녀는 울먹였다.

"전 귀신이 아니에요.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녀의 증언과 팀이 수집한 목격자들의 진술, 그리고 지하철 CCTV 영상은 '연인 간의 다툼'이라는 이름 아래 묻혔던 사건을 '명백한 스토킹 범죄'로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박민수는 마침내 구속되었다. 스토킹처벌법 위반, 협박, 강요 혐의였다.


에필로그: 돌아온 일상

사건이 해결된 후, '7호선 귀신' 괴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7호선 스토킹 사건'의 전말이 채워졌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부끄러워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내 긴급 신고 시스템을 강화했고, '침묵하지 않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몇 달 뒤, 오민재의 상담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되찾은 한지민은 큰 용기를 냈다.

그녀는 낮 시간, 사람들로 붐비는 7호선 열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을 보며 그녀는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작은 다툼이 시작되었다. 한 남자가 여자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있었다.

여자는 작게 "놔요"라고 말했지만, 남자는 더 세게 붙잡았다.

주변 사람들이 잠시 웅성거리더니 이내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한지민이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어 비상벨 앱을 눌렀다.

그녀의 작은 행동을 본 다른 승객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 손 놓지 못해요!"

또 다른 승객이 일어났다. 그리고 또 한 명.

그것은 기적 같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외면당해 사라지는 산 자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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