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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수사대- 시즌1 도시의 그림자

5부: 곤지암의 진실

by 공감디렉터J


Chapter 1: 문닫힌 402호

대한민국에서 '흉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원장이 환자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소문, 시신을 묻었다는 지하실, 그리고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402호의 괴담까지. 이곳은 그 자체로 완벽한 공포의 아이콘이었다.

2024년 10월 15일. 의뢰는 뜻밖의 인물에게서 왔다.

수십 년간 방치된 병원 건물의 새로운 소유주, 부동산 개발업자 정민석이었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부지를 매입하고, 최첨단 실버타운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괴담 때문에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초조함이 뒤섞여 있었다.

"인부들이 밤마다 헛것을 봤다며 일을 그만두기 일쑤고, 얼마 전엔 한 명이 2층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자기가 '하얀 옷을 입은 여자'를 보고 피하려다 발을 헛디뎠다고 주장하는데, CCTV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건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제 사업을 망치는 실질적인 위협입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곳에 귀신이 없다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해주십시오."


의뢰의 핵심은 명료했다. '곤지암 괴담'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 공포가 허구임을 밝혀내는 것.

이번 사건은 도시의 역사와 인간의 심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기에, 도시전설 연구가 박유진과 심리학자 오민재가 전담하기로 했다.


Chapter 2: 전설의 기원

"모든 전설은 아주 작은 사실의 씨앗에서 시작됩니다."

박유진은 낡은 신문 기사와 지역 도서관의 자료, 심지어 90년대 PC 통신 시절의 괴담 게시물까지 파고들었다. 그가 가장 먼저 파헤친 것은 '원장이 환자를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핵심 괴담이었다.

결과는 허무했다.

병원장 이창호는 환자를 죽이지도, 자살하지도 않았다. 그는 병원이 문을 닫은 후에도 한참을 더 살다가 2008년, 지병으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의 자녀들은 지금도 서울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괴담의 가장 큰 기둥 하나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병원은 왜 문을 닫았을까요?"

박유진은 광주시청의 낡은 문서고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냈다.

1990년대 초, 정부는 상수원 수질 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규를 시행했다. 남양정신병원은 이 새로운 규제에 맞는 오수 처리 시설을 설치할 자금력이 없었고, 결국 1996년 10월, 스스로 폐업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귀신도, 살인도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돈 문제였던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잔인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요?"

이지수가 물었다.


오민재가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정신병원은 예로부터 사회의 불안과 공포가 투영되는 거울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다름'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죠. 귀신이나 괴물로요."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곤지암 병원은 그저 문을 닫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빈 공간에 자신들의 가장 추악한 편견과 공포를 채워 넣은 겁니다."


Chapter 3: 잊혀진 사람들의 노래

오민재와 박유진은 폐허가 된 병원 내부로 들어갔다.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잊힌 사람들의 흔적을 찾았다.

깨진 창틀에 누군가 서툰 솜씨로 새겨놓은 이름. 벽에 희미하게 남은 낙서. '집에 가고 싶다'는 짧은 문장.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402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은 소문과 달리 잠겨있지 않았다. 경첩이 녹슬어 뻑뻑할 뿐이었다.

박유진이 힘을 주어 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먼지 쌓인 방 안에서 낡은 나무 상자 하나가 발견되었다. 상자 안에는 한 여성 환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일기장에 귀신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창밖의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한 감상,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정상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1994년 3월 12일

오늘은 아들이 보고 싶어 밤새 울었다. 간호사님은 내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고 싶은 것도 병일까?


1995년 7월 8일

옆 침대 순자 언니가 어제 퇴원했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나도 언젠가 저 문을 걸어 나갈 수 있을까?


1996년 9월 23일

병원이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사람들은 우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서워하는데.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는 거칠게 찢겨 있었다.

오민재는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며 당시 환자들이 느꼈을 극심한 불안과 사회적 고립감을 읽어냈다.

그들은 귀신이 아니었다. 그저 아팠고, 외로웠고, 세상으로부터 잊히고 싶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402호'는 저주받은 방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기록했던 마지막 공간이었다.


Chapter 4: 공포의 정체

"공사 인부가 봤다는 '하얀 옷의 여자'는 무엇이었을까요?"

강태우가 물었다. 팀은 다시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오민재가 답했다.

"기대 효과와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파레이돌리아는 불분명한 자극을 익숙한 패턴으로 인식하는 뇌의 작용이죠. 구름에서 사람 얼굴을 보거나, 나무 그림자에서 괴물을 보는 것처럼요."


그는 사고 현장의 CCTV 영상을 재생했다.

"이 인부는 '귀신이 나올 것'이라는 강한 기대를 품고 어두운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 조각이나 빛의 왜곡 같은 불분명한 자극을, 뇌가 스스로 '하얀 옷을 입은 여자'라는 익숙한 공포의 이미지로 완성해버린 거죠."

오민재가 영상을 멈췄다.

"그는 귀신을 본 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공포를 본 겁니다."


박유진이 덧붙였다.

"사람들은 공포 영화와 괴담을 통해 '정신병원 = 귀신'이라는 공식을 학습했어요. 그리고 그 공식을 현실에 적용한 겁니다. 곤지암은 괴담이 만들어낸 괴담이에요. 실체 없는 공포의 자기 복제죠."


에필로그: 진짜 위령제

'미스터리 수사대'는 조사 보고서를 병원 소유주 정민석에게 전달했다.

보고서의 마지막에는 일기장 사본이 첨부되어 있었다.

며칠 후, 실버타운 착공식 대신 작은 위령제가 열렸다. 정민석이 사비를 들여 마련한 자리였다.

그는 화려한 건물을 짓기 전에, 이곳에서 상처받고 잊혔던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위령제에는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몇몇 옛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더 이상 괴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저 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한 노인이 낡은 건물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일기장을 쓴 그녀의 친구가 적어두었던, 그 시절 함께 불렀던 노래였다.

그 노래는 공포 영화의 배경음악보다 훨씬 슬프고 아름다웠다.


강태우는 사건 파일을 닫으며 일기장 사본을 한 번 더 펼쳐봤다.

마지막 페이지에 희미하게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귀신이 아니에요. 그냥 아픈 사람이에요.'


우리가 외면한 사람의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이 된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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