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 누군가 다녀간 책상

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4화

by 공감디렉터J

안대리 사건 이후, 회사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목하에 전사적인 보안 점검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마케팅팀 한차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이런 요식행위를 누구보다 경멸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완벽하게 대비했다.

그의 책상은 언제나 칼같이 정돈되어 있었고, 중요한 서류는 삼중 잠금장치가 된 서랍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그는 남의 것을 탐할지언정, 자신의 흔적은 남기지 않는 교활한 족제비 같은 사내였다.

보안 점검 따위는 자신과 상관없는, 어수룩한 자들을 솎아내기 위한 요란한 쇼일 뿐이었다.


새벽 보안점검이 진행된 다음날 아침.

사무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 한가운데 위치한 한차장의 책상이 도둑맞은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한차장의 책상과 PC 등을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같은 시간, 보안팀의 사무실.

보안팀 직원이 한차장의 책상 위, 모니터 받침대 바로 옆에 놓여 있던 새빨간 USB 하나를 집어 들며 묻기 시작했다.

“이건 저희 팀 자산목록에 없는 USB입니다. 차장님, 개인 소유물이신가요?”

“아니. 처음 보는 건데?”


한차장은 분명히 치웠다. 어젯밤 퇴근 직전, 그는 책상 위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서랍의 잠금장치까지 손으로 흔들어 확인했다. 저런 촌스러운 빨간색 USB는 그의 취향도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놓아둔 것이 분명했다. 불쾌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보안팀 직원은 매뉴얼에 따라 USB를 감사팀에 인계했다.

한차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심장은 불길하게 뛰고 있었다.


감사팀 사무실, 싸늘한 정적 속에서 USB가 노트북에 꽂혔다.

모니터에 파일 목록이 뜨는 순간, 감사팀장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USB 안에는 ‘gift’라는 이름의 폴더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난 몇 년간 한차장이 발표하고 그의 실적으로 기록된 거의 모든 기획안과 보고서들이 원본 파일 형태로 저장되어 있었다. 문제는 파일의 ‘작성자’와 ‘만든 날짜’ 정보였다.

‘신제품 론칭 프로모션 기획안’의 최초 작성자는 작년에 퇴사한 박주임이었다. ‘경쟁사 시장분석 보고서’는 현재 마케팅팀의 후배인 오주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한차장은 교묘하게 파일의 표지와 목차만 수정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저장해 놓은 버전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마치 트로피를 수집하듯, 남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박제해 놓은 징그러운 컬렉션이었다.


“한차장, 이게 다 뭔가?”

감사팀장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한차장은 입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모함입니다! 누군가 저를…!”


하지만 변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USB의 가장 깊숙한 곳, ‘2nd_CHANCE’라는 이름의 폴더가 열린 순간, 감사팀 모두가 숨을 삼켰다.

그 안에는 회사의 명운을 뒤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기밀 정보가 담겨 있었다.

한차장은 최고위 임원들의 식사 자리에 동석하며 알게 된 소문들을 퍼즐 맞추듯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그는 이 정보를 자신의 ‘보험’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감사팀의 조사는 이제 단순한 아이디어 도용을 넘어, 회사 존립을 위협하는 스파이 행위 및 기밀 유출 혐의로 번져나갔다.

한차장은 모든 것을 부인했다. 하지만 USB는 그의 모든 악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PC 포렌식 결과, 그의 추악한 사냥 방식이 드러났다.

그는 후배들에게 다가가 “잠깐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데, PC 비번 좀 알려줄래?”라며 천연덕스럽게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원격 프로그램을 설치해 파일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빼돌렸다. 막내 이사원이 밤새 작성한 시장 조사 보고서를 검토해 주겠다며 가져간 뒤, 작성자 이름만 바꿔 상무에게 직보 한 내역도 발견되었다.


그의 가스라이팅은 악마와도 같았다. 소규모 아이디어 회의에서 나온 훌륭한 제안을 다음 날 임원 회의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인 양 발표하고는, 정작 아이디어의 주인이었던 후배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김대리, 내가 발표해야 상무님이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거야. 다 김대리 아이디어 실현시켜 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나중에 다 알아줄 거야.”

그렇게 공을 가로챈 뒤, 그는 보상처럼 작은 밥 한 끼를 사주며 입을 막았다.


실적이 좋은 프로젝트가 생기면 담당 상사를 구슬려 자신의 이름을 ‘자문’ 역할로 슬쩍 끼워 넣었다.

“상무님, 이번 프로젝트 성공에 제 조언이 결정적이지 않았습니까? 다 같이 고생했는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거래에 분노하는 팀원들에게 상사는 오히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한차장 이름 넣어줘.”라며 압력을 가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재능 있는 직원들은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환멸을 느끼고 회사를 떠났다.

Q 역시 그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뛰어난 기획력을 자랑했던 Q는, 자신이 제안한 획기적인 프로젝트가 통째로 한차장의 공으로 둔갑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모두가 한차장의 악행을 알았지만, 누구도 그의 교활함과 윗선과의 유착 관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빼앗는 데는 도사였지만, 자신의 더러운 증거를 통째로 빼앗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한차장은 결국 해고되었다. 뿐만 아니라 회사는 그를 ‘산업 스파이’ 및 ‘기밀 유출’ 혐의로 고발했다.

그가 보험으로 삼으려 했던 각종 기밀문서와 녹취록은 오히려 그의 목을 조이는 증거가 되어,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때 그를 비호했던 상사들은 가장 먼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한차장이 짐을 싸서 쫓겨나던 날,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그 침묵은 어떤 야유보다 더 차갑고 잔인한 형벌이었다.




보안 점검이 있던 날, 자정이 막 지난 시간.

모든 불이 꺼진 사무실은 거대한 무덤처럼 고요했다.

오직 비상등의 희미한 녹색 불빛만이 차가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그때, 사무실 가장 구석자리에서 누군가 유령처럼 소리 없이 일어섰다.

그는 임대리였다.

입사 이래 누구와도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

늘 그림자처럼 존재하며, 회의 시간에도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사람.

그는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인 채 어둠을 가로질러 한차장의 자리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촌스러운 빨간색 USB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한차장이 퇴근하며 서랍을 잠그는 소리, 열쇠를 가방에 챙기는 소리까지 완벽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한차장의 시선이 닿지 않는 모니터 받침대 옆, 가장 눈에 잘 띄면서도 가장 의심하기 어려운 그 자리에 USB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마치 제물을 바치듯.


'계획대로 물건 전달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안대리의 희뿌연 안경 밑으로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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