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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Nov 05. 2024

하고잽이로 산다는 건

애가 둘이어도 하고잽이일 수 있잖아요?

하고잽이라는 말은 경상도 방언이다. '하고 잡-(하고 싶-)+-이'에 움라우트가 적용된 말이다. '하고 싶다'를 경남 지역에서는 '하고 집다, 하고 잡다'라고 한다. (출처: 고향말여행)


나는 언제부터 하고잽이였을까. 그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제 깨달았는지는 기억이 난다. 아마 둘째를 낳고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육아로 잊고 지냈던 나의 하고잽이 성향이 되살아 났던 것 같다. 아마 한국에서도 나는 계속 하고잽이였던 것 같지만, 한국, 특히 서울에서는 티도 나지 않는 데다 그게 쉽게 충족이 된다. 할 것도 많고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캐나다, 특히 내가 사는 중소도시는 그렇지 않다. 할 것도 그렇게 많지 않은 데다, 기본적으로 여유를 즐기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깔려있다. 때문에 이런 내 하고잽이 성향이 유독 튀게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쯤, 카운슬링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일에서 멘탈이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받은 여러 검사 중 TCI 결과가 인상 깊었다. 내가 위험 회피 성향은 매우 낮고, 자극 추구 성향은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그때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내가 육아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걸 늘 하고 싶은 이유가 그런 성향에서 오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금방 싫증을 내는 것이 스스로 미운 부분 중 하나였는데, 그게 나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관심이 가는 직업이 생겼고, 도전해보려 한다. 그 직업을 위해 필요한 수업을 들으려면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 때문에 일 마치고 도서관에 갔다가 아이들을 픽업하거나 운동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는데, 이 일상이 나는 행복했다. 일- 육아만 반복하는 것이 제일 나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루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시간을 쪼개 하고잽이의 욕구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겹도록 평온한, 또 치열한 내 삶을 버텨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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