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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행복은 손에 잡히나요?

[그림이 던지는 질문들-17] 앙리 마티스

'Joy of Life'(1905-6), 반즈 파운데이션

마티스의 그림 '삶의 기쁨(Joy of Life)'(1905-6)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숲 속에서 나체의 여인들이 저마다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실적이지도 않고 전형적이지 않은 색을 뭉텅뭉텅 칠한 배경 위로 가늘지만 선명한 선으로 실루엣을 그린 형체가 더없이 자유롭고 분방하게 느껴집니다. 색도, 형태도 제각각 따로 노는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가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제목이 제시하는 삶의 기쁨이 밝고 따뜻한 색과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지면서 엷은 미소가 지어집니다. 




원근법도 정확하지 않고 명암도 없으며 색깔도 조절이 되어있지 않은 이 그림은 기존의 시각에서 볼면 전통적인 그림의 문법을 단 하나도 지키고 있지 않은 엉터리 그림이었습니다. 더구나 여인들의 모습이 꽤나 관능적이고 그들의 포즈나 행동도 무척 과감합니다. 

화가가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사람일 것 같지만 마티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그림을 그리고 언제나 그림에 대해 고민하며 성실하고 묵묵하게 그림만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당시 파리의 예술계가 아방가르드적인 실험 정신, 전통과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예술 뿐 아니라 삶도 자유분방했던 반면 마티스는 그림과는 달리 다소 보수적이고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자유연상기법처럼 언뜻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지만 마티스는 또한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색을 선택할 때나 칠할 때 고심에 고심을 했고 형태를 표현할 때에도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아무런 고민이나 잡념없이 그저 무심한 듯 평화롭고 한가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실은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마티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그림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화가로는 꽤 늦은 나이인 21세부터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 마티스는 우연한 계기로 그림에 입문을 하게 됩니다. 2년 전 맹장염으로 요양을 하던 마티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가 사다준 화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티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을 공부하고 법률사무소에서 이미 근무도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마티스는 '일종의 낙원'을 경험했다고 훗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후 마티스가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을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때문인지 마티스는 한시도 아까웠나 봅니다.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고 루브르 등 박물관에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파리에서 광풍처럼 불어대는 새로운 미술에 대한 실험들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등 새로운 움직임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쇠라에 의해 창시된 점묘법을 이용한 신인상주의에는 꽤 진지하게 발을 담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티스는 이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세잔과 고갱의 영향을 받아 형태와 색에 대한 독창적인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동료 화가들 몇몇과 함께 '야수파'로 불리게 되는 그림들을 전시하면서 마티스는 비난과 더불어 관심도 받기 시작했습니다. 거트루드/레오/마이클 스타인 남매 등 미국에서 온 컬렉터들이 그의 그림을 사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러시아 부호들도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본격적인 그룹 활동이 아니었던 '야수파'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제각각의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마티스 또한 자의적인 색의 표현과 거친 붓칠에서 더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남프랑스 어촌 마을인 콜리우르 지역에 머물면서 원색을 더욱 과감하게 사용하고 다양한 터치를 실험하면서 밝고 활기찬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위의 그림 'Joy of Life'가 바로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마티스는 점차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균형적인 색과 절제된 선의 사용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그림을 추구하고 연구했습니다. 정물이나 풍경을 넘어 인물의 형태에 대한 실험에 매달렸습니다. 마치 단 한번의 일필휘지로 유려하면서도 생동감있게 인물을 표현하려는 노력에 주력했습니다.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포즈의 누드를 최소한의 간결한 선을 사용해 형태, 양감, 움직임까지 표현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블루 누드'(1907)나 'The Back Series'(1908-31) 등 인물의 형태를 다양한 포즈와 동작을 통해 핵심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마티스에게는 마치 지난한 탐구의 여정과 같았습니다. 

마티스는 특히, 댄스 시리즈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모티브는 바로 'Joy of Life'에서 가운데 가장 뒷부분에 위치한 춤을 추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마티스가 콜리우르에서 머물 때 마을 사람들이 추던 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스페인 카탈루나 지방에서 유래된 전통춤 사르다나입니다. 둥글게 서서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춤은 사실 축제나 의식에서 흔히 사용됩니다. 그만큼 친근하면서도 보편적인 춤이죠. 보기만 해도 절로 흥겨워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마티스는 사르다나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 그림을 그린 'Dance'(1910)를 그렸습니다. 'Joy of Life'에서 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과격한 춤사위가 엿보입니다. 자세나 동작이 극한까지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한쌍으로 그린 정적인 모습의 'Music'(1910)과 완벽한 대비를 이루도록 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The Dance'(1910), 에르미타주 미술관


이후 마티스는 미국의 제약사업가인 반즈의 컬렉션 빌딩을 위한 벽화에도 댄스를 차용했습니다. 세 개의 반원 모양으로 장식된 벽면을 채워야하는 것이라 완벽한 형체를 유지해야만 하는 정적인 그림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동적인 모습을 담은 춤추는 사람들은 중간중간 잘리더라도 역동감과 일체감이 느껴지기에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Dance'처럼 둥글게 서서 춤을 추는 모습을 할 수도 없었죠. 이에 마티스는 대형을 원이 아닌 일렬로 하여 앉고 서고 점프하면서 뛰노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Dance II'(1932-3)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Dance II((1932-33), 반즈 파운데이션




밝고 가벼운 색과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본질을 표현한 마티스의 그림은 분명 보는 이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댄스 시리즈처럼 흥겨운 동작이 아니더라도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맑고 순수하고 평온한 느낌이 듭니다. 놀랍게도 이는 마티스가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습니다.

"내가 꿈꾸는 것은 고통과 우울이 아닌 균형, 순수, 평온의 예술입니다...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는, 마치 피곤한 몸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처럼 말이죠."

마티스는 그림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전달만 하는 수단이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보는 이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이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비록 손에는 잡히지 않지만 보기만 해도 한없이 편안하고 깨끗하고 맑은 느낌, 이것이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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