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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23. 2021

어디로 데려다 드릴까요?

[그림이 건네는 질문들-11] 반 베르미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5),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뽀얗고 둥근 얼굴이 환하게 피어오릅니다. 검은 눈동자와 흰자위가 또렷하고 오똑한 콧날 아래 붉은 입술이 반짝입니다.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커보이는 귀에 달린 귀걸이는 마치 온 우주를 품은 듯 신비롭기만 합니다. 얼굴을 환하게 비추는 빛은 이마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터번 또한 빛을 받아 밝게 빛납니다. 모든 것이 빛이 나고 신비롭습니다. 


그림 속 여인을 신비롭게 해주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우선 의상에 있습니다. 터키 식의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있고 옷차림 또한 이국적입니다. 마치 두루마기를 입은 것처럼 독특한 옷차림입니다. 왼쪽귀에 크게 달린 귀걸이 또한 인상적입니다. 진주가 맞네 아니네 말이 많기는 하지만 제목에도 쓰일 정도로 진주귀걸이의 존재감은 엄청납니다. 크기에 있어서도 압도적이지만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모습은 물론이고, 반대편의 풍경을 반사하여 투명하게 비추고 있어 그림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빛의 존재도 소녀의 모습을 신비롭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창으로부터 들어온 자연광인지 실내의 조명에서 나온 빛인지 알 수 없지만 터번의 파란색이 빛으로 산화되어 바래 보일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빛에 눈을 찌푸리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신비로움을 가장 극대화하고 있는 것은 검은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밝은 빛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암흑과도 같은 배경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반 베르미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5)는 보통의 초상화와는 다르게 보입니다. 소녀의 신분이나 배경을 알 수 있는 힌트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배경도 검은색이고 의상도 특이합니다. 진주귀걸이에 비춰진 방안의 풍경이 보인다고는 하지만 이는 일종의 트릭일 뿐이고 소녀가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특정인의 얼굴과 상반신을 그린 그림을 트로니(tronie)라고 합니다. 역사화 등 커다란 그림 속 인물을 위한 연습용으로 그리거나 그 자체를 완성된 예술품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인물의 얼굴 표정에 집중하여 갖가지 감정을 표현하거나 연극적 또는 이국적인 의상을 입혀 전형적인 인물을 표현하거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위의 그림도 이러한 의미에서 트로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르미르는 보통 가정집의 실내에서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부녀자나 하녀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럴 때에는 실내의 풍경이 드러나고 등장인물이 전신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의 얼굴보다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이 위치한 공간이 더욱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반면 이 그림은 소녀의 얼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이 유난히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고 그 분위기가 신비로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림의 제목에도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죠. 덕분에 이 그림의 제목은 몇 번의 변화를 거쳤고 지역마다 불리는 제목도 다릅니다. 

이 그림은 베르미르의 사후 그의 작품을 정리하는 카탈로그에 '터키 의상을 입은 두 개의 트로니' 중 하나로 기록이 되었다가 나중에 암스테르담에서 판매될 때 '고전 의상을 입은 초상화'로 불렸습니다. 그러다 이 그림이 현재 놓여있는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에서 '터번을 쓴 소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후 1995년이 되어서야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현재의 제목으로 이름 붙이게 되었죠.

베르미르는 진주로 만든 목걸이 또는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착용한 여인의 모습을 자주 그린 바 있습니다. 심지어 베르미르의 위작에서도 이러한 점을 이용해 진주 액세서리를 많이 등장시켰죠. 유난히 커다란 크기나 은빛이 도는 색깔로 인해 진주가 아니라 광택이 나는 주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림의 제목으로는 주석보다는 진주가 더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어 제목 'Meisje met de parel'을 단순 영역한 것이고,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영어 제목은 '어린 소녀의 두상' 또는 '진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한 비평가는 "소녀가 진주귀걸이를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검은 배경 위 소녀의 안으로부터 밝게 빛나는 빛 때문에 진주인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그림 속에서 밝게 빛나는 소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그 빛이 진주처럼 우아하면서도 은은한 광택이기에 진주가 들어간 제목은 그림과 더욱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빛과 더불어 소녀의 배경이 되는 검은색은 빛을 더욱 강조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할 뿐 아니라 관람객을 그림 속으로 빨이들이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블랙홀처럼 말이죠. 그림 속 소녀에게 빠져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암흑 같은 배경이 한편으로는 공포를,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녀는 살포시 왼쪽으로 돌아서 관람객을 응시합니다. 소녀는 분명 암흑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중이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녀의 자세는 정적이지 않습니다. 몸은 측면이지만 얼굴은 4분의3 정도가 보입니다. 이는 잠깐 돌아보았을 때에나 가능한 포즈입니다. 계속해서 이러한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소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관람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관람객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모습. 소녀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었을까요? 우리를 돌아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를 어딘가로 안내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우리를 어딘가로, 어디든 데려다 줄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입술을 떼고 말을 거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디로 데려다 드릴까요? 




'View of Delft'(1660-61),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소녀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우리에게 묻는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나 해두어야겠습니다. 어서 대답하지 않으면 소녀는 저 멀리 사라져버릴 것만 같거든요. 아니면 원래 그녀가 가려던 곳으로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왠지 굉장히 신비롭고 환상적일 것만 같습니다. 비록 검은 배경이라 음침한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소녀가 우리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기야 하겠습니까? 안심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소녀는 자신이 살던 그 시대 그 도시로 우리를 데려갈지도 모릅니다. 베르미르가 그린 풍경화 'View of Delft'(1660-61)를 보면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마치 사진을 보는 듯 사실적으로 그린 그의 풍경화는 당시 모습을 완벽히 재현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 그림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 네덜란드 공화국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네덜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녀의 안내를 받아 가장 아름다운 그림 속 도시를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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