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1990년의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천막공장을 운영하던 아빠의 사무실에 일하던 경리가 갑자기 퇴사하면서 전화를 받을 사람이 없어지자 아빠는 나를 데리고 출근하셨다.
하루 용돈 500원을 받던 때라, 아빠 따라가서 전화만 받으면 일당 1만 원이라는 거금을 제안하시기에 뒤도 안 돌아보고 신나게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빠는 그때 300평 정도 되는 공장의 곳곳을 종횡하며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한가로이 사무실에 앉아 전화만 받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전화가 오면 무조건 "네, 잠시만요. 사장님 곧 바꿔드릴게요."라고 얘기한 뒤, 사무실에 있는 마이크로 "사장님, 전화 왔습니다!"하고 외치는 굉장히 단순한 업무였다.
호기롭게 아빠를 따라나서기는 했으나, 막상 사무실에서 해야 할 업무를 숙지할 때부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렸을 때 유독 숫기가 없었던 나는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공장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것부터 너무 민망했다.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첫 통화의 임무는 완수했다. 하지만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내 앳된 소리에 공장 안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의 눈이 한순간 공장 출입구 쪽에 있는 투명유리로 만들어진 사무실 속에 뾰로통하게 앉아있는 나를 향하면서 미소 짓는 것 또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로 마이크는 잡지 않았다. 대신 사무실에 앉아 계속해서 아빠를 눈으로 열심히 좇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아빠가 가르쳐준 대로 받은 뒤, 잽싸게 아빠가 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려가 아빠를 전화기 곁으로 데려오곤 했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를 찾으러 갈 때마다 키 180cm인 아빠는 내 눈에 마치 거인처럼 커 보였다.
무거운 천막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사람들에게 일을 지시하고, 더 많은 일들을 혼자 해내는 아빠.
주말이면 아빠는 우리 4남매를 데리고 참 잘도 다니셨다.
낚시가 취미셨던 아빠는 늘 바닷가 근처로 가서 낚시를 했고, 우리는 아빠의 천막공장에서 만들어진 크고 멋진 텐트 아래에서 쉬고, 먹고, 바닷물에서 놀았다.
수영도 잘했던 아빠는 우리 눈에 닿지도 않을 만큼 먼 섬까지 단숨에 수영해서 그곳에 성게며, 소라, 홍합등을 한 아름 따오시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추억이 쌓여가는 만큼 그 추억 속에 생생했던 것들은 점점 제 색을 읽어가고 쇠해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아빠는 엄마와 함께 스타렉스를 개조한 차를 타고 국내곳곳을 여행 다니셨다.
또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유난히 접촉사고가 잦아지고, 길눈이 밝았던 아빠가 운전하면서 헤매기 시작했을 때,
아빠는
"이제 운전면허를 반납할 때가 되었다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와 같이 동사무소에 가서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버스카드를 한 장 받으셨다.
버스카드를 한참 바라보고 있던 아빠는 "주혜야, 이거 갖다주고 아빠 다시 운전면허 달라할까?"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아빠의 눈빛은 찬란했던 옛 시절의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아쉬움 속에서 쫒고 있었으리라.
아빠의 운전면허증이 동사무소의 소유가 된 지 이제 2년 정도 되었다.
아빠는 가끔씩 버스를 타시기도 하고, 대부분은 우리 4남매의 차를 타고 가까운 곳을 가는 것 외에는 대부분 집에 계신다.
지병인 당뇨가 심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날씬했던 아빠는 이제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실 만큼 살집이 붙으셨다. 그리고 이제는 방광 쪽이 안 좋으신지 한 번씩 대변을 못 참으시기도 한다.
오늘은 작은언니와 엄마, 아빠를 모시고 바닷가로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늘 바다 근처에서 살고 싶다 하셨던 분들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자식들이 함께 모셔가지 않으면 바다구경도 못하시는 실정이니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고, 맛있는 전복솥밥과 물회도 먹었다.
자주 가는 정원이 이쁜 카페에 가서 차를 한잔 마시자하며 식당을 나왔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는 볼일을 보셔야겠다며 화장실로 가셨다.
우리는 음료와 빵을 주문하고 떨고 있는데 아빠가 화장실 가신지 벌써 십 수분이 지났음을 확인하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작은 언니가 전화를 걸어보니 아빠가 바지에 또 실수를 하셨나 보다.
조금 묻어서 정리를 하고 있다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20분이 지나도 오시지 않자 남자화장실로 찾아가 보았다.
아랫도리를 훌렁 벗어 내린 아빠는 세면대에서 바지를 헹구고 계신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당황한 나는 언니를 찾아가 급하게 불렀다.
그랬더니 데스크에 있던 카페주인분이.
"어머, 죄송해요. 못 볼 꼴 보셨죠. 진짜 왜 저러시는지 몰라."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
그건 못 볼 꼴이었다.
태산 같던 아빠는,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해 똥을 아무 데서나 지리고 제 몸하나 가누기도 힘들어 본인의 부끄러움은 챙기지도 못한 채 공중예절을 어지럽히는 '못 볼 꼴'이 되어있었다.
당장 달려가 아빠를 도와드려야 했지만, 나는 차마 용기 내지 못했다.
대신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고, 바로 성인용 특대형 기저귀를 주문해 엄마의 집으로 보냈다.
즐거웠던 우리의 나들이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급하게 상황을 마무리하고 아빠의 옷을 봉지에 담고 다행히 차에 싣고 다니던 큰 타월을 허리에 두른 채 아빠는 차에 탔다.
나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엄마와 작은언니가 아빠를 향해 날 선 말들을 내뱉었다.
평소에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늘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친다면서...
그러면서 엄마는 울먹이셨다.
아마도... 같이 늙어가는 모습의 연민과 서글픔 때문이었을 거다.
작은언니는 속상한 마음에 아빠에게 닦달했던 게 미안했는지 손도 대지 않아 테이크아웃해 온 음료를 아빠에게 건넸다.
아빠는 무안함을 씻어내려는 듯 큰소리로 "아! 고맙다. 너무 시원하네!" 하시며 큰 잔을 단숨에 비워내셨다.
아마 그 상황 속에서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으로 입이 바짝바짝 탔나 보다.
꿀꺽꿀꺽 음료를 들이켜는 아빠의 모습을 백미러로 보면서 나는 스쳐가는 내 머릿속의 생각을 잡아채고 그 생각과 마주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아빠 저렇게 원샷하시고 차 안에다 또 오줌 싸시면 어떡하지...'
그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많이 서글펐다.
차 안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가라앉아 있었고, 우리는 모두 화나고, 짜증 나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슬픈.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묵을 지킨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차에서 내리실 때 응원의 말을 짧게 건넸다.
괜히 건넨 말들로 인해 안 그래도 제일 어수선할 아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게 될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늙음.
나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는 진리를 잊어버린 듯 살아간다.
그리고 또 모두가 늙는 것도.
품위 있게 늙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신도 육체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때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
한동안 죽음을 바로 곁에 두며 살았던 내게,
늙음이란 화두는 또 이렇게 뜨겁기만 하다.
늘 어른은 어른답게, 노인이 되어서도 품위 있게 늙어야지 다짐했지만, 그게 내 의지대로 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나는 이 많은 욕심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자연에 순응하고, 내 늙어가는 몸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일의 고상한 늙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