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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에서 전업맘, 그리고 ‘촘촘 따리 투자자’로

프리랜서 워킹맘의 수기

by 쪼하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들 에릭 트럼프가 이끄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업체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의 토큰 2차 세일에 참여했다. 1차 세일 때 '이게 맞나'하면서 망설이던 사이 금방 마감됐고 그보다 3배 높은 가격에 다시 열린 2차 세일로 WLFI 토큰을 몇 개 받았다. 물론 당시에 여윳돈이 많지는 않아서 아주 소액만 넣었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이달 초, 토큰의 락업이 해제된 날에 해당 토큰이 바이낸스, 업비트에도 상장된다는 발표가 떴다. 상당히 시간이 촉박한 상태였지만 메타마스크(개인 디지털자산 지갑)에서 업비트 계좌로 USD1(월드리버티파이낸셜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과 WLFI를 옮겼고 WLFI는 소액이지만 상장 후 거의 최고가에 팔 수 있었다. WLFI 락업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밈코인 TRUMP도 오를 것 같아 전날 소액의 TRUMP를 사둔 전략도 맞아떨어져서 이날 트럼프 관련 코인으로만 몇 십만 원을 벌었다. 상당히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 흡족함은 바로 다음 날 사라졌다. 업무를 위해 텔레그램을 보다가 한 국내 투자자가 전 재산을 WLFI 세일에 투자해 1000억 원 대 수입을 올렸다는 글을 봤다. '저렇게 인생을 걸어야 투자했다고 말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는 확신 있는 종목에마저 최대 100만 원밖에 넣질 않으니 아무리 돈을 벌어도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내 투자 방식은 소액의 수익을 촘촘 따리 모아놓는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코인 투자자가 쓴 '시드(자본금) 1억 원 미만 외출 금지, 집에서 투자 공부하자'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아, 다들 인생을 바꾸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 그렇지만 나는 불확실성에 올인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당장 내년부터는 월 몇십 만 원의 부모급여가 끊기는 게 걱정이기에 투자로 한 푼도 잃어서는 안 되는 처지가 됐다.


워킹맘 시절에는 한 종목에 많게는 1000만 원, 적게는 몇 백만 원을 턱턱 넣었다. 물론 그만큼 확신이 드는 종목에만 투자하기도 했지만 한동안 물려도 월급으로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매달 들어오는 금액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간 워킹맘의 고충만 토로하던 내가 이제는 전업주부의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시간이 없고 건강이 상했으며, 아이와 관련된 일을 챙기기 어려웠던 반면, (사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육아를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배달비가 아까워서 어떻게든 요리를 하고, 쿠팡 식자재 배달을 완전히 끊고 도보 15분 거리의 도매 가게에서 채소를 사 온다. 아무리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다지만 직전 회사의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작고 소중하기에 어떻게든 아껴야 한다. 화, 수, 목 오전 10시에서 2시까지 한정된 시간에만 기사를 쓰고 있으며, 업무보다는 육아 및 살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만큼, 요새 내 역할은 전업주부에 가깝다. 프리랜서 일을 더 구해볼까 했지만 지금의 생활에 일까지 더하기엔 건강이 뒷받혀주질 않는다. 아이가 좀 더 커서 손이 덜 갈 때까지는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는 다른 투자자들처럼 공격적으로 행동하기엔 상황이 더 각박해졌다. 그렇다고 그 투자자들을 마냥 부러워하거나 좌절하며 완전히 투자를 접기엔 내게는 몇 만 원이라도 소중했다. 해결책은 내가 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루에 2만 원이라도 벌면 반찬값 벌었으니 좋아하고, 10만 원 넘게 벌면 문화센터 비용을 벌었으니 행복해하기로 했다. 또, 거래소에 찍히는 금액만으로는 돈을 번 게 실감이 나질 않으니 단타로 번 금액은 바로 생활비 통장에 넣기로 했다. 투자자로서의 날 좌절시켰던 WLFI 수익도, 어제 번 월드코인(WLD) 수익도 생활비 계좌에 입금하고 그 돈을 바로 필요한 곳(문화센터 재료비 이체)에 사용했다.


한 종목에 몇십만 원 정도 넣으니 몇 만 원밖에 못 먹는 게 당연하지, 뭐. 가끔 십만 원 대 벌면 운수 좋은 것이고.


남편은 겨우 그만큼 벌려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냐고 혀를 끌끌 차지만 그래도 이 '촘촘 따리 투자'를 완전히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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