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엇을 써야 할까?

by 쪼하

글을 못 쓴 지 한참 됐다.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나 글감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실제로 노트북을 켜지는 않았다.


최근 아이가 아팠다. 독감이 아니었는데도 사흘 동안 아이의 체온이 38도를 기준으로 계속 오르락내리락거리는 탓에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집에 갇혀 아이 병간호를 했다. 그동안 웬만하면 친정 부모님께 육아를 도와달란 연락을 드리지 않았는데 그 주에는 두 번이나 SOS를 쳐야만 했다. 아무리 파트타임 근무라지만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정보육을 해야 했기에 그 피로도가 상당했다.


아니다,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그저 뭘 써야 할지 모르겠을 뿐이다.


지난달 말에 친한 동생을 만났다. 직장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기억하던 그 동생은 내게 다시 글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이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브런치에 썼던 글들이 내 인지도를 올려줬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의욕이 샘솟았다. 그렇지만 그 의욕은 집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꺾였다.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집안일들이 '이거야말로 너의 할 일이야'라는 메시지를 담은 채 날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일들의 감시 어린 눈길 속에서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다시 주부가 되어버렸다.


차라리 살림이라도 완벽하게 한다면 콘텐츠가 생겨날까? 내 시간을 쪼개 가족을 위해 요리하지만 남들의 조리법을 참고해서 남들 하는 수준을 만들어내는 데 그친다. 한동안은 프리랜서 업무 시작 전에 부지런히 집안을 쓸고 닦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흐린 눈을 하고 지낸다.


엄마로서의 나는 '남들처럼만 잘 해내면 다행이겠다'라는 생각으로 허덕이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돋보이는 육아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열혈 엄마였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에 그렇게도 애정하던 웹3? 주어진 업무 시간에만 수박 겉핥기처럼 볼 수밖에 없다. 비록 육아에 능통한 엄마는 아니지만 업무 외 시간은 최대한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시장에서는 딱히 어떤 분야를 들여다봐야겠다는 마음도 잘 들지 않는다.


한동안 시도해 본 투자 콘텐츠도 쉽지는 않다. 애초에 촘촘 따리 수익으로 남들이 혹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그나마 최근 미국 주식 중 몇몇 종목을 스윙으로 두 번 익절하고 나와서 기분은 좋지만 별 것도 아닌 일을 자랑하는 글처럼 보일까 봐 저어 된다.


이런 고민들로 인해 브런치는 방향성을 잃고 잠정 중단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내가 애정하던 공간이었기에 계속 공백으로 두고 싶지 않아서 남들이 관심 없을 고민이라도 몇 자 적어봤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학군지에서 자란 내가 아이를 숲으로 보내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