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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Aug 17. 2024

세종대왕님이 욕을… 만들었다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한 아이가 물었다.

“근데요 선생님, 세종대왕님은 왜 욕을 만들었어요? 그건 나쁜 말이잖아요. "

이게 무슨 말일까. 마침 욕을 주제로 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던 중이었다. 아이의 생각은 그랬다.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모든 단어도 만드신 것 아니냐고. 그러니 세종대왕님이 욕도 만들었고, 욕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렇게 나쁜 말들은 지금도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종대왕님께서 큰 오해를 받고 계셨다.

세종대왕님은 우리 고유의 문자 한글을 만드신 것이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과 자연의 이름을 모두 만드신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온 그 이름들을 쉬운 우리 글자 한글로 쓸 수 있게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아... 몰랐어요." 다행히 금방 이해했다. 가끔은 이해시키는 과정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때때로 아이들에게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웬만하면 삼천포로 빠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려고 한다. 아무래도 해외에 살고, 외국계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아이들의 배경지식이 남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돼지고기 안 먹는 거죠?

종교에 관심이 없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세계 3대 종교를 알려주며 종교를 떠나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의 배경이기도 하니 공부를 위해서라도 알아두는 게 좋다고 말해 주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 가끔씩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지구는 왜 동그래요?

-북극과 남극은 왜 추워요?

주제와 동떨어진 이런 질문에 휘둘리면 안 된다. 정말 몰라서 하는 질문도, 궁금해서 하는 질문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수준을 테스트하는 질문이라면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고, 호기심이 왕성해서 하는 질문이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서 수업 내용과 상관없이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 아이라면 “오~ 나도 궁금하다. 집에 가서 알아보고 다음 주에 선생님한테도 얘기해 줘." 하면 금세 꼬리를 내린다. 숙제가 추가되는 건 원치 않는 아이들이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늘 받는 질문이지만, 한 번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늘 털털거리고 헤헤거리는 선생님이지만 하나쯤은 나도 아이들에게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이랄까.


-근데요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생님 이름이 감사장이에요?

갑자기 뚱딴지같은 이건 무슨 말일까.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예전에 한글날을 기념해서 호치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한국 노래 대회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받은 감사장을 보고 있었다. 크게 한글로 '감사장'이라고 쓰여있으니 내 이름인 줄 알았나 보다. 다른 아이에게 보여주니 "아~ 선생님 이름이 김사장이었어요?" 그마저도 틀리게 읽었다. 이 또한 모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가깝고도 먼 나라, 아무리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베트남이라고 해도 해외이긴 하니 벌어지는 일들이다.


“근데요 질문할 게 있는데요…” vs “자, 집중하고~!"

아이들과 나의 치열한 눈치 싸움이다. 과하지도 서운하지도 않게 하기 위해 순간순간의 대처가 빛을 발해야 한다.

늘 생각이 어디로 튀어갈지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 아이들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요."하며 감탄하는 아이가 고맙고, 나에게도 간식을 나눠주는 아이들도 고맙다. 수업 끝나고 간식 상자에 있는 간식을 가져가면서 자기가 가져온 간식 하나를 놓고 가는 귀여운 아이도 있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었을 거라며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아이들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게 만들어준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이들은 좋게만 봐준다.

그래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쌤~ 우리 애들이 쌤 진짜 좋아하는 거 알죠?"

이 맛에 오늘도 수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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