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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식은 남은 사람을 위로하는 자리다

사회관계

by 위안테스

송별식은 남은 사람을 위로하는 자리다

'식'이란 그런 게 아닐까...

특히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장례식, 송별식 같은 의식은

떠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영혼이나 또 다른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이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라는 영화가 있다.

장례식을 계기로 가족들의

애증이 교차하고

그러한 감정들의 해소를 통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떠나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가

오히려 떠나보내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내려 간

장례식이 그랬다.

외할머니가 살아생전 8남매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슬하의

8남매의 자식들도 형제들의

관계와 사이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

외할머니 장례식에

자식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20명이 넘는

손주들(친 손주, 외 손주)도 부모와 함께

한 자리에 모였다.

이런저런 일들로

30년 만에 다시 보는 사촌도 있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외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식이

모두를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장례식은

슬픔과 감정을 토해내고 모든

가족을 만나게 하는

축제가 되었다.

사실 뭐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7년을 함께 보낸 상사가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시게 되었고,

송별식을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송별식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떠나보내는 자리가

그와 함께 했던 추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으면 했다.

준비하는 시간 동안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직업을 가진 이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일' 그 자체였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업'을 통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결국 그가 한 '일'은

그 자체로 삶의 일부였고

삶 그 자체였다.

말콤 글래드 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하루 3시간,

10년 동안 꾸준히,

한 분야에 10,000시간을 들이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

송별식의 첫 멘트가 그렇게 정해졌다.

"30년 최소 7만 시간,

1만 시간의 일곱 배인

7만 시간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셨다."

허투루 :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그는 30년간,

무엇 하나도,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식이란, 떠나는 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를 떠나보내는

송별식이지만,

이 자리에 모인

우리의 서운함을

위로하는 자리입니다"

"그는 농부처럼 일했다.

벌레 탓이라고,

날씨 탓이라고,

그날만 늦게 일어났다고

농부는 변명하지 않는다.

변명하지 않는 농부의 성실함으로

우리 식탁의 풍성함이 있다.

그는 변명하지 않는 30년을 보내고,

우리와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

"당신의 30년 인사 업무 중

최고의 결과물이 우리다.

당신의 열정과 도전은 이루어졌다.

우리가 바로 그 증거다"

"여기에 그가 있었다.

우리에게 열정과

헌신이 필요할 때에는

가장 앞에,

우리가 가장 빛나는 순간에는

가장 뒤에,

우리의 영광과 고난,

어디에나 그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미래에,

그가 함께 할 것이다."

"그가 떠나는 마지막에

이런저런 말을 할수록

오히려 부족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작은 '꽃말' 하나로 대신합니다.“

'프리지아' :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응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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