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아내와 정식으로
교제하고 처음으로
처가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 생각난다.
날짜가 정해지고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마트에 가서
동그란 고리가 달려있는
유아용 젓가락 연습기를 사는 것이었다.
나는 젓가락을 X자 모양으로 교차해서
사용하는데 내가 젓가락질을
못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아무도
나의 젓가락질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음식을 먹는데 크게
불편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깍두기나 미끄러운
반찬을 집는 것이
조금 어렵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처가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히고 나니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길까 걱정이 되었다.
일주일간 마트에서 산 연습용
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연습을 했다.
책상에 콩을 깔아 두고
한 개씩 집어서 작은 접시로
옮기면서 연습을 했다.
처가를 방문하기로 한 시간이
토요일 오후 3시라 점심을
먹지는 않을 것 같아 내심 안도를 하였다.
다만 어떤 간식류가 나올까 걱정이 되었다.
포크로 찍어 먹는 과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늦지 않게 안양에서
처갓집이 있는 정릉으로 출발했다.
아내가 장모님이 팥을 좋아하신다고
알려줘서 처가 근처 유명한 빵집인
나폴레옹 과자점에 가 팥 아이스바와
팥빵을 사서 처가에 갔다.
아파트 주차장에 미리 나와 있던 아내와
처가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심장이 뛰었다.
아파트 현관에서의 어색한 인사와
함께 거실에 앉았다.
장모님이 간단한 상을 하나 내 오셨고
나는 일주일 동안 연습한 젓가락질을
사용할 간식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장모님이 내 오신 건
난이도 하의 김밥이었다.
어차피 식사의 개념이 아니라 가쁜 하게 얘기
중간중간에 김밥 몇 개를 집어 먹었다.
뭐라 얘기했는지... 거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횡성 수설 하면서
첫 처가 방문을 무사히 마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모님은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식사 시간을 피해
3시로 약속 시간을 정하시고
음식도 먹기 편한 김밥을 하셨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이후
상견례와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이겨내고 결혼을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처가를 방문했을 때
장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상 가득 차려주셨다.
특히, 아내에게 들으신 건지
내가 좋아하는 싱싱한 굴도
준비를 해주셨다.
젓가락질에 있어
난이도 극상의 굴을 보자 고민이 되었다.
'저거를 한 번에 집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혹시 몰라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분산되었을 때
재빨리 굴을 젓가락으로 집어 보았다.
먹음직스러운 굴은 내 젓가락질을
비웃듯 미끄덩거리며 다시
굴 접시로 떨어졌다.
누가 본 사람이 없나 눈치를 본 다음
그날 식사에서 깔끔하게
굴을 제외시켰다.
최대한 복스럽지만
게걸스럽지 않게 젓가락질이 가능한 동 그랑 때,
고추전, 불고기 등 최대한 안전한 반찬들로
식사를 잘 마쳤다.
그리고 아내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기야 굴 너무 맛있어 보이던데
하나도 못 먹었어... "라고 말했다.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젓가락질을 못해
그냥 안 먹었다고 하니 차 안에서
아내가 데굴데굴 구를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굴 킬러가 왜 굴을 안 먹지'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너무 웃어 눈물이
난 눈가를 훔쳤다.
이후 내가 씻는 동안 장모님께 전화해
깔깔거리며 나의
굴 굴욕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씻고 나와서 "그렇게 재밌냐?"라고
한마디 했더니
" 나, 엄마한테 혼났어.
눈치껏 남편 밥 위에 굴을 올려주지 뭐 했냐며"
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다음에 처가에 갔는데 또 굴이 있었다.
작은 앞접시에 담겨 개인별로
굴이 담겨 있었고
내 앞접시에 살포시 올려져 있는
작은 티스푼 하나...
결혼 후 9년이 됐지만
장모님에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란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부부간의 다툼에 대해서도 전혀
관여하지 않으신다.
2년간 아들을 키워주시면서
우리 부부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부모가 아이게 게 화를 내고
대접하지 않으면 애가 밖에 가서도
대접을 받겠느냐.
애라고 생각하지 말고
어린아이도 생각이 다 있으니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을 가려서
해야 된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낳은 자식인데도 가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데
아직도 우리 장모님은
손주들을 그렇게 대하신다.
아이가 잘 못하는 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알려줘야 하는 것이라며
손주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
"당신... 다시 태어나면 나랑 결혼할 거야?...
"음.. 다음번에는 각자
다른 사람 하고도 살아보자.
그런데 장모님은 다음번에도
내 장모님 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