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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조각.

by 남다른 양양

1.

최대한 쓰인 마음은 돌려놓지 못할 정도로 소진되어 다시는 그때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될수록 예전의, 혹은 그때의 나를, 그때의 마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마음을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때에는 가볍기도 혹은 감춰두기도 해서 어떤 아리송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마음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면 사람이, 혹은 그 무언가를 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결국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 중 하나에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거나 혹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글을 쓰려고 앉아있으나 계속해서 쓰고 지우고의 반복인 것을 보면 지금 마음이 정체되어 있거나 아니면 뭘 써야 할지 모르는 마음이 계속해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 이걸 써야지 싶다가도 스스로 정한 금요일에 앞서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게 휘발되는 것을 보면 아직 글쓰기는 어렵고 여전히 드러내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3.

유독 내 인생에 드라마가 많았던 9월이었다. 생각보다 마음을 많이 다치기도 했고, 누군가에 대한 인내가 끊어지기도 했으며, 어렵게 닿은 소식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적도 있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웃으면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안전한 공간에 들어가면 스스로를 무감하게 만드는 것 역시 9월 유독 심했더랬다.


직면하고 생각해 보면 될 일이지만 그것도 싫어서 도망쳤더니 새벽에 잠을 못 자는 것이 부지기수였고, 책을 읽지도 생각을 해내지도 못하니 메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던 시기였지 않나 싶다.


나는 유독 지칠 때 스스로를 챙기겠다는 의지가 약해지는데 이럴 때 나는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다 던져버린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던져버릴 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것이 억지로라도 정리가 돼서 가끔은 속이 상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 속이 상해도 무언가를 더 어찌어찌하지 못하는 건 던져버린 것들을 혹은 정리된 무언가를 신경 쓸 만큼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지할 무언가가 하나도 없네.' 하면서 자조하고, 의지만 해오는 모든 사람들을 차단하기 시작한다. 눈물은 많아지나 겉으로 흐르지 못하고 속으로 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이미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런 모습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니 결국 또 '나를 살리는 건 나뿐이야.'라는 말로 어쭙잖게 위로하고 버틸 뿐이다. 나도 가끔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니까.


삶은 행복하고 황홀하지만 생각보다 어렵고 헤쳐나가야 하는 것들이 많고 마냥 좋을 것 같은 시기보다 이렇게 메말라가는 시기가 더 많은 것 같아 가끔 이 모든 게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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