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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24. 2021

쉽지 않고 강해진다.

2021년 봄의 하프마라톤 세상은 쉬워지지 않는다. 당신이 강해질뿐이다.

"Life doesn't get easier. You just get stronger."


일주일 남았다. (One Week To Go) 토요일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9주간의 트레이닝의 마지막 주이다.

 

3월 15일 월요일. 서머타임(Daylight Saving) 이 시작돼서,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한 시간 더 빨라져 있다. 언제부터 인가, 앞으로 나아가는 봄 (Spring Forward)이라고 기억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5시였을 아침이 일요일 아침 6시다. 오후에 해가 점점 길어진다.. 서머타임이 시작된 월요일의 아침은 더 어두운 것 같기만 한 것 같았다. 5시에 일어났는데도, 새벽 4시였을 아침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비몽 사몽이었던 아침이었다. 새벽 7시 30분에 미팅이 있는 아침이었다. 우리 팀이 두 달여 정도 준비했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아침이었다. 큰(?) 일이 있으면 항상 달려주는 가이드 런, 빅데이 런  (Big Day Run)이다. 모든 계획과 준비 그리고 연습은 끝났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해서 잘하면 되는 거다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큰일이 있으면 아침엔 꼭 달려야 한다. 계획, 준비를 연습을 같이한 팀을 믿고, 잘하면 좋은 것이고, 설령 계획했던 되로 되지 않더라도 후회하거나 자책할 필요 없다는 응원과 지지를 들으면 달린다. 그리고 큰 미팅은 계획, 준비, 연습한 것보다 더 잘됐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과가 원하던 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저 감사한다.


3월 16일 화요일. 스피드 런을 달려야 하는데, 비가 오고 너무 춥다. 그래서 몸을 사린다. 안에서 일립티컬로 대신해본다. 점심시간에 3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1마일을 달리는 시간 10분이면 충분하다. 후다닥 달리고 들어온다. 몸도 풀리지 않는 시간일지라도, 주어진 시간에 달린다. 시간을 정해놓고 달릴 수 있는 몸과 마음 여유가 있는 날이 있는가 하면, 스케줄에 따라 시간이 나는 시간에 달려야 하는 날도 있다. 그러면 주어진 시간에 달리면 된다. 나에겐 10분이 주어진 다면 1마일을, 나에게 30분이 주어진다면 5Km를 달려볼 수 있는 시간, 60분이 주어진다면 10km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개념이 달라졌다. 시간, 또 다른 의미가 생겨버렸다. 지나가버리는 시간, 돌이킬 수도, 잡을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지만, 시간은 나에게 달려 나아갈 수 있는 거리가 되어 버렸다.


Atalanta Shooting. 때론 냉혹한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또 한 번 보고도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다. 미국에 살고 있는 동양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이 점점 많아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또, 자꾸 되풀이되는 상황에 머리는 이해가 되지 않고, 가슴은 아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과 질문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서있을 수도 없어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요?


3월 17일 수요일. 어제 못 달린 스피드 런을 달려봤다.  어제 나를 다그치지 않고 달리고 싶은 만큼만 달린 것도 나쁘지 않았다. 스피드 런 비포 하프마라톤 (Speed Run B4 the Half), 하프 마라톤을 달리기 전 마지막 스피드 런이다.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뭔가 비장하다. 속도를 바꿔 가며 달려간다. 빠르고 더 빠르게, 느리고 더 느리게 그렇게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달린다. 내가 살고 있는 나의 하루도 빠르고 더 빠를게, 느리고 더 느리게 그렇게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지나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달리기와 나의 하루 정말 많이 비슷하다.


3월 18일 목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일립티클에서 달려본다. 2 마일 런 (Two mile run)을 달렸다.


3월 19일 금요일. 쉬기 위해서, 느리게 달렸다. 긴 호흡으로 걸었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하프 마라톤 전날, 세계 수면의 날 (World Sleep Day)이다. 클럽하우스에서 좋은 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잠에 잘 들었다. 내일 잘 달려 보기 위해서... 회복과 재생이 이루어지기 위한 레이스의 시작은 아침이 아닌 잘 자고 일어날 그전날 밤부터 시작이 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3월 20일 토요일, 하프 마라톤을 달리는 날이다.


2021년 이 시작된 지 얼마도 안된 1월 14일 나는 왜 하프마라톤을 달리려고 했을까?  앞으로 나가보겠다는 나의 희망이었을까? 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붙어 버릴 것 같던 내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의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날이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따뜻한 날이 오기까지만 조금만 버텨보자가 아닌, 추운 날의 나를 잘 돌봐 보자 라는 마음으로 달리고 싶었나 보다. 하루하루, 한주 한주 천천히 착실히 트레이닝을 해왔다. 왜 봄에 레이스를 준비하는 게 힘든지도 알게 되었다. 어둡고, 추운 겨울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기 싫은 것들을 하지 않으려면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날씨에도, 계절에도 구애받지 않고 기복이 심하지 않은 나를 만들어 보기 위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이어도, 감정과 에너지를 잘 조절하며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기 위해,  달리려고 했나 보다. 매일 달린다는 것, 단순 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루틴 일수도 있겠다. 습관과 루틴, 내가 달리는 습관과 루틴은 나에게는 안정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날을 위한 것들이 아닌, 좋지 않은 날들을 위한, 그런 날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를 잡아주고, 온전히 해쳐 나아갈 수 있는 안정망 같은 것이다.


근육은 기억한다. 머슬 메모리 (Muscle Memory), 무한 반복 훈련을 통해 몸이 기억해서 실전에서 발휘할 수 있게 평소에 천천히 꾸준히 기억시켜준다. 몸은 배신하지 않는다. 상황은 언제나 바뀔 수 있고,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언제나 바뀔 수 있다. 매일 천천히 꾸준한 달리기는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한다. 어떤 기술이라도 무한한 반복 훈련을 통해 몸이 기억해야 실전에서 발휘할 수 있다.


2020년 11월 3일 프린스턴에서 내 첫 인생 하프 마라톤을 달렸었다. 최초 이자, 최고 기록 1시간 53분 43초였다. 결국은 어제의 나와의 경주일 텐데, 굳이 나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워서 이기고 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달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회복과 성장 그리고 행복이었으니 건강하게 완주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2021년 3월 20일 하프마라톤을 달린 시간 1시간 59분 52초 제일 빨리 달린 구간은 1마일 8분 36초, 평균 9분 26초 마일을 달렸다. 좀 더 빨리 달려 볼걸 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빨리 달릴 수 있었으면, 빨리 달렸을 것이다. 마라톤을 달려봤으니, 하프마라톤은 껌이겠지?라는 오만과 자만은 없었다. 하프마라톤이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달렸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2020년 첫 마라톤을 달렸다. 그 후 딱 1년이 지나고, 2021년 봄 하프 마라톤을 달렸다. 또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지난 9주, 64일 동안 달려온 거리는 276.82km였다.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었다.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된다.  Move toward the direction you are headed. 


2021년을 시작하며 함께 했던 하프마라톤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나의 오늘이 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정해진 틀이 없고, 나의 의지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오늘이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오늘만 집중해서 한다. 어쩌면 그것밖에 할 수 없음에, 더 열심히 소중히 나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선 앞에 선다. 그 선을 넘어 나아가기 위해서... 달리면서 회복하고, 성장하고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건강함이 허락되기에 내가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들, 결코 당연해서도 당연하지도 않은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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