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9 임재화 <늦가을 아침>
‘공감’ 참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쉽게 하지요.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글로 말로, 공감이란 말을 남발하는데, ‘정말 공감할까?‘를 되물어보면 하얀 거짓이 섞여있을 때가 있어서, 고민할 때도 많아요.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기준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과 동물사이엔 어떨까요.
어제는 우리 복실이가 다리를 절고, 아픔을 호소하는 데도, 사람의 눈은 그것을 바로 볼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 공감‘의 잣대를 대고 함께 느껴보려고 했는데, 왠지 제 마음이 정직하지 않는 거예요. 평소 도덕적 기준을 너무 분명하게 들이대며 정직을 운운하는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저 모르게 똥을 싸놓은 모습에 화도 나고, 언제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나 라는 못된 생각도 들고요. 분명 요즘 제가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건 사실인 듯싶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양심에 걸려 제 책상 아래 자리를 펴고 쓰다듬어 주었더니, 5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안 하고 있더군요. 사람나이로 치면 100살은 되었을, 고관절이 나가도 여러 번 나가고, 발바닥에 배긴 굳은 살의 두께도 장난 아닌 이 가여운 복실이에게 화를 낸 것이 어찌나 후회되던지요. ’ 공감‘이란 말, 결코 쉽지 않은 말입니다. 갈수록 걸으려고 안 하니, 소위 개 유모차를 준비해야 되나 까지 고민하게 되는군요. 누가 늙음을 미학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사용했는지...
학생들은 겨울이 왔다고 좋아하는데, 늙음을 짊어진 저는 벌써부터 움츠려 들고요. 어제는 살짝 눈송이 몇 방울을 맞으니, 더 심란하고 긴장하게 되었답니다. 이럴 때, 경제적 역할은 그만하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시집을 펼치고, 그냥 읽기만 할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만 간절하네요. 그래야, 마음에 부딪히는 모서리들을 에둘러서 갈아 낼 수 있으려나 하면서요.
임재화시인의 <늦가을 아침>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늦가을 아침 - 임재화
이른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세상은 온통
희뿌연 한 안개의 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저 멀리서 덜커덩거리며
철마(鐵馬)가 달려온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스멀스멀 밀려오는
늦가을의 하얀 안개는
곧, 겨울이 다가온다고
조그만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듯 얘기를 한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에
간밤에 찬 바람이 몰아쳤는지
수북하게 쌓여있는 은행잎
온통 하얗게 내려앉는
가을 안개와 함께
만추(晩秋)의 아침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