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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16

2025.11.20 채재순 <늦가을 조문>

by 박모니카

색 바랜 누런 종이 상장 하나. 그 위에 쓰인 ’ 교내 백일장 대회‘라는 문구. 그리고 숫기없이 조용하기만 했던 고교시절의 제가 떠오르더군요. 아마도 글로서는 처음 받았던 상장이었을 거예요. 이과생이었던 제가 그 사건을 기준으로 백일장 때마다 무언가를 쓰고, 수학과 과학 성적은 떨어지고, 다행히 영어와 국어 성적은 올랐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무슨 무슨 행사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상장도 주고 상금도 장학금이란 이름으로 주곤 했어요. 학교에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상장 하나 받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학원에서는 학생들의 성격, 재능을 고려해서 제 맘대로 별의별 상장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학생들의 학습동기부여에 유용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이야 ’ 별거 아닌 상장‘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결코 그렇지 않거든요. 엄청 좋아하지요... 제가 만든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처럼요.^^


어제는 토요일 있을 ’제1회 봄날의 산책 디카시 공모전‘ 수상자들에게 드릴 상장의 문구를 만드는데, 제 나름 머리를 돌리며 고민했어요. 이런저런 타 공모전의 예시를 보기도 하고요. 최종적으로는 디카시 심사를 해주신 시인님들께서 도와주셔서 상장의 문장을 완성했답니다. 사소한 일 하나라도 정성을 다 하는 봄날의 산책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답니다. 상금 역시 통장으로 ’ 쏘는 일’이 가벼워서, 은행에 가서 신권으로 깨끗하고 구김 없는 현금으로 준비했고요. 이러니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모니카... 하하하.

그런 와중에 올해 말랭이 어머님들의 시를 담은 에세이 6집도 나왔고요. 시대가 좋아져서 저 같은 사람이 제 맘대로 저의 기록물을 출간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담아 추억의 재산으로 남겨 놓는 더 큰 행운이 있음도 고맙지요. 타인의 글은 어지간히 읽고 또 읽어 오탈자를 잡아냈는데, 제 글은 그런 과정에 소홀했던지, 남편은 보자마자, 오타를 잡아내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 하며 지나갑니다.^^ 올해도 말랭이에서 열심히 산 증표로 남긴 것 만해도 다행스럽지요. 채재순시인의 <늦가을 조문>을 읽으며 숙고의 시간을 덧댑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늦가을 조문 - 채재순


떨어지는 자작나무 잎사귀에게 술 한 잔

사라지는 구절초 꽃잎에게 술 한 잔

방금 흩어진 구름 한 점에게 흰 국화 한 송이

인적 드문 솔숲에 누워있는 참새 주검에게 국화 한 송이

더 이상 꿈을 피우지 않는 청춘에게 향 한 촉

가끔씩 시들해지는 내 하루에게도 향 한 촉

늦가을, 어딘가 조문을 한 번 다녀오는 것이다

다음날 쓰다 달다 말없이 고봉밥을 먹었다

그다음 날 미루었던 답신을 오래오래 쓴다

11.20 상장1.jpg 임피향교옆 연지못
박모니카-늦게피어난시꽃(입체형1).jpg 글방시인들은 김정희 시인 지도하에 글 배운 말랭이마을 어머님들 이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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