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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20

2025. 11.24 도종환 <늦은 꽃>

by 박모니카

글 쓰는 사람들은 이맘때가 되면 늘 기웃거리는 곳이 있지요. ‘신춘문예‘라는 관문이지요. 독립출판, 문예지 등을 비롯하여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글을 대중 앞에 보이는 매개체가 요즘처럼 흔한 때는 없기에, 꼭! 굳이? 하면서 ’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의 과정을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왠지 ’ 신춘‘이란 말처럼, 새 봄이 오기 전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 듯한 등단과정은 늘 흥미롭습니다.


어제 저는 디카시 수상자들에게 2026 신춘문예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는데요. 경상도 지역에서는 디카시가 주요 영역으로 공모전에 올린 곳이 더러 있더군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춘문예 문학의 영역에, 수필분야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수필 및 에세이를 쓰는 문학인의 수가 늘어서인지, 지금은 대부분의 공모전에 수필영역이 자리 잡고 있지요. 아마도 디카시 영역도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제가 첫 테이프를 끊었으니, 많은 지역에서 더 발전하는 공모영역이 되면 좋겠다 싶군요.


11월의 마지막 주간 첫날이네요. 오늘이 오기 전 어젯밤, 잠도 오지 않아서 글 한편 써두었습니다. 언젠가 볼 일기처럼요.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만날 말랭이마을 어머님들 이야기지요. 오전에 당신들의 시가 실린 책을 나눠드리며 자화자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수고했다고, 점심도 사 주신다 하네요. 어쨌든 약속을 지키게 되어서 좋습니다. 내년에도 기회가 있다면, 한글공부 더 하면서 개인 시집 도전도 격려해 볼까 합니다.


어제부터 읽는 시집은 도종환 시인의 신작집 <고요로 가야겠다>인데요. 고요와 만나면 그곳에 시가 있다고 말하는 시인의 길잡이를 따라가고 있네요. 무엇보다 시집 표지가 한 겨울의 담묵을 보여주어서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오늘은 오래전에 쓴 시 <늦은 꽃>을 들려드릴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늦은 꽃 – 도종환


꽃은 더디 피고 잎은 일찍 지는 산골에서 여러 해를 살았지요 길어지는 나무들의 동안거를 지켜보며 나도 묵언한 채 마당이나 쓸었지요 내 이십 대와 그 이후의 나무들도 늦되는 것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늦게 피는 내게 눈길 주는 이 없고 사람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낙화는 빨리 와 꽃잎 비에 젖어 흩어지며 서른으로 가는 가을은 하루하루가 스산한 바람이었지요 내 마음의 꽃잎들도 젖어 뒹굴며 나를 견디기 힘들어했지요


이 산을 떠나는 날에도 꽃은 더디 피고 잎은 먼저 지겠지요 기다리던 세월은 더디 오고 찬란한 순간은 일찍 지평에서 사라지곤 했으니 내 남은 생의 겨울도 눈 내리고 서둘러 빙판 지겠지요


그러나 이 산에 내 그림자 없고 바람만 가득한 날에도 기억해 주세요 늦게 피었어도 그 짧은 날들이 다 꽃피는 날이었다고 일찍 잎은 지고 그 뒤로 오래 적막했어도 함께 있던 날들은 눈부신 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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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분야 신춘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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