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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21

2025.11.25 기형도 <가을에>

by 박모니카

11월에 입동과 소설이 있었는데도, 찬 기운이 다가오질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죠. 그 덕분에 개인적인 일을 하는데 맘이라도 편하게 했었는데요. 오늘 새벽이 되어서야 드디어 겨울장군의 깃발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번개가 한번 번쩍하더니, 우박소리, 천둥소리가 산마을을 흔드네요. 후다닥 일기예보를 살피고 오늘 할 일의 목록을 살펴봅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어제의 사진들은 모두 말랭이 마을 어머니들이시네요. 당신들의 시 작품이 들어있는 에세이집 <늦게 피어난 시꽃이 내 이름을 불렀다>를 받아보시는 얼굴에 진짜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함께 지도했던 김정희 시인은 떡을 가져오시고 지역지인은 꽃다발을 준비하셔서 딱 12명의 아주 작은 자찬 출간회를 가졌답니다.


저는 말랭이마을 생활에서 어머니들과 함께한 동네글방은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한글 배움, 시낭독, 시낭송, 시 쓰기에 이르기까지, 배움에 절실했던 그분들의 소망이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신들의 이름이 쓰인 책을 받아보시면서 아마도 주름 한 두줄 정도는 쭉 퍼졌을 거라 믿어봅니다. 새해에는 더 자주 글을 쓰기로 약속했습니다.


또 하나 어머니들의 칭찬말씀, ’ 나이 들수록 주택에 사는 것이 좋아. 같은 동네로 이사 와서 참말로 좋고만. 작가님이랑 진짜 이웃사촌이 됐네. 잘했어. 잘했어.‘ 라며 등을 두드려주셨습니다. 여전히 쌓여있는 이삿짐을 보시며, 함께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말씀했지요. 어서 빨리 집들이하라고 하셔서, 저야말로 부지런해져야겠어요. 이사오자마자 가장 따뜻한 이웃이 생겨서 정말 좋고요, ’더불어 함께‘ 살고 싶은 일을 잘 생각해서 실천해 보겠습니다. ^^ 기형도시인의 <가을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에-기형도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幽靈(유령)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音聲(음성)를 만들어 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울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혀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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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대표, 김정엽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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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김방자 어머니(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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