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7 김영춘 <손가락 끝에 매달린>
도대체 주인이란 여자는 누구인가. 이삿짐만 내려놓고, 어쩌다 한 번씩 들르고. 그것도 한두 시간 뭔가 하는 둥 마는 둥. 오늘은 CCTV를 설치하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겠다는 뜻일까. 물건도 없는 집에 도둑 들어올까 미리 경계하나. 어찌 됐든 나도 바짝 긴장해야겠다. 어느 날 날 보고 뭐 했냐고 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
새 집에 있는 감나무의 투정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생전 처음 사는 곳에 CCTV를 달아놓고, 그것도 핸드폰으로 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네요. 세상은 빨리도 지나가는데, 저만 느리게 다 지나간 기차의 선로에 서서 ’ 가버리면 나 혼자 다시 만들면 되지 ‘라는 묘하게 솟구치는 욱한 감정을 담고서요.
어쨌든 한 번씩 거치는 제 손길로 주택의 거실에 공간이 넓어지고, 조만간 책장에 책이 놓이겠지요. 그중 시인들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담고 싶어서 책장 두서너 개 정도는 시집만 놔야지 하는 맘으로 시집주문을 시작하네요.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는 제가 읽어보고 제가 결정해야 독자에게 전할 수 있을 테니,,, 책방주인 색깔을 이해하는 사람이 고객이자 독자가 될터, 미래의 단골고객을 향해 세세히 준비하며 달려갑니다.
오늘은 전주에서 특별행사가 있어서 참석하는데요. 줌으로 만나는 시강독의 시인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네요. 아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고, 여하간 시인들이 전하는 이야기 마당에서 놀다가 올 예정입니다. 오늘 만날 시인 중 그분들이 말씀하실 시를 읽다가, 다음 시를 보며, 새 집의 감나무가 떠올랐어요.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 위에 주홍빛 감 두 개가 남았더군요. 감농사, 사과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이런 시를 들려드리면 참 좋겠다 생각하면서 얼마 전 하늘로 올라간 시동생 이 그리워지는군요. 그가 가버린 11월은 아직도 있는데 하며... 기억이 조각조각, 순간순간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이럴 때 좀 오랫동안 기억창고를 열어둬야지 싶기도 하고요.
김영춘 시인의 <손가락 끝에 매달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손가락 끝에 매달린 - 김영춘
사과를 따는 손가락의 힘이
사과를 눌러 멍들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좋은 농사꾼은
사과를 딸 때 삯꾼을 쓰지 못하고
가족끼리만 따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는데
껍질과 그 안의 달콤한 속살까지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런 말을 전해 들으면서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과 알을 스치며 손가락의 끝을 느끼는
농사짓는 사람의 정성도 정성이려니와
봄여름 가을볕 비바람 아래서
날마다 스스로를 두껍게 하며 살아온 껍질이
끝내는 제 안의 여린 속살을 지킬 수 없었다니
마음이 아려왔다.
이런 까닭에
제 손가락의 끝을 걱정하는 어떤 농부의 마음은
사과 알의 곁에 오래 머물게 되었을 테니
나무에서 사과 한 알이 맺히고 떨어지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턱없이 눈물겨운 곳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