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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24

2025.11.28 복효근 <버팀목에 대하여>

by 박모니카

쌀독항아리에서 익어갔던 홍시처럼, 시를 읽으며 시를 붉게 익힐 수 있을까 했던 지난밤. 처음 보는 시인들과 익은 시를 먹으며 서먹했던 당신에서 다정한 우리로 또 익어갈 수 있을까를 기대했던 지난밤. 결핍한 마음을 안고 징검다리를 건너 시(詩)의 세상에 다녀왔더니, 밤새 꾼 꿈은 얼마나 달달하고 맛있던지요. 깨어나기 싫었답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라 별도의 시간을 내는데 부담이었지만, 제가 언제 이렇게 좋은 자리에 가 볼 수 있으랴 하며, 떠난 문학여행이었죠. 평범한 일상에 붉은 포인터 한 점을 찍으면 삶의 오감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시를 필사하고, 시를 낭독하고, 시를 써보는 문우들과 함께요.


혼자 가기 아까운 곳, 혼자 먹기 아까운 음식, 혼자 읽기 아까운 책,,, 그 무엇이든 혼자 하기 정말 아깝다 하는 일에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은 성격 탓에 저절로 ’ 정보의 여왕‘ ’ 실천의 군단장‘ 같은 명찰을 달곤 하지요. 어제 함께 한 문우들의 왕복 여행에 그어진 한 줄기 선은 홍시 하나 달린 감나무 위에 쌓인 하얀 눈(雪)처럼 또렷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름값> 고증식시인, <다정한 것에 대하여> 김영춘시인, <절> 박남준시인,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박두규시인,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시인, <가문비나무> 안상학시인, <겨우 핀 꽃> 안준철시인, <씨 말리기> 이병초시인, <의자> 이정록시인, <살구꽃 그림자> 정우영시인.


어제 함께 했던 시인 10명을 불러드리니, 꼭 한번 시인들의 시집 한 권, 아니 아니 시는 어려워하시는 분은 위에 추천한 시 한수 정도는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내년에는 저의 책방에도 이 시인들의 발자국이 새겨지길 희망하면서^^


오늘은 어제의 일들이 쌓여서 저를 기다리네요. 그것도 중요한 일들이... 그래도 언제나 시간은 제 편이라, 저의 마음을 잘 알고 독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지라, 그를 믿고 찬찬히, 천천히, 꼭꼭 씹어 당이 흘러나오는 하얀 쌀밥 먹듯이, 그렇게 거름 삼아 일을 해야겠습니다. 어제 내린 비에는 따끔한 겨울화살이 박혀있더군요. 혹여 독감이 되지 않도록 늘 따뜻하게 옷차림 하시고요.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에 대하여>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이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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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시노래특강3.jpg 완주 전통문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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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시노래특강2.jpg 군산문우들,,, 모두 시인들과 낭독도 하시고요. 정말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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