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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26

2025.11.30 도종환 <고요>

by 박모니카

동양고전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 1장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이 문장의 진정한 속뜻을 우리 책방벗님들에게는 상식이겠지요. 특히 ‘배워서 익힌다 ‘는 학습이란 두 글자 속에 담긴 ’습(習)이 가진 힘. 바로 이 점을 되새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학(學)’을 어떻게 하면 활용하고 실천하는 ‘습(習)’이란 도구로 만드는가에는 오로지 수백 수천 번의 부단한 노력과 성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들은 고전특강 <사자성어로 읽는 명심보감>의 시간이 더욱더 빛났던 것은 강의하신 학자의 이론 설명보다는 아는 것은 실천하는 그분의 삶의 태도였습니다.


평범한 책방 문우 몇 분이 매일 필사하는 고전명구가 하루하루 쌓이는 것을 보면서 특별한 이벤트 하나 넣어 자발적인 동기유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준비한 강의시간이었는데요.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고 청중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차담회 같은 분위기로 옛사람들의 말을 회자되는 시간이었지요. 특별히 제 벗들과 함께 하는 마음을 '녹명(鹿鳴, 사슴록, 울명)-함께 어우려져 살고자 하는 마음'이라 비유해주셔서, 앞으로 이 모임방의 이름을 이렇게 바꾸어겠다 생각했지요.

가장 핵심어였던 ‘적(쌓을 積)‘으로 이루어진 사자성어, ’ 적소성대(積小成大), 적선여경(積善餘慶), 그리고 상대어 적악여앙(積惡餘殃) 등의 배경 이야기를 들으며, 사소한 그 무엇들을 ‘쌓아놓다’의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요. 저만 해도 4년째 아침편지라는 형식을 쌓아놓으면서 여러분과 소통을 하는 즐거움을 하고 있고요. ^^


수많은 책과 글 중에서 우리가 고전을 경시해서도 안되고 반드시 필독하며 학습의 장으로 이끌어 낼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새해에는 좀 더 폭넓게 책방벗님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인문의 대문(大門)을 열어볼까 합니다.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으니까요. 유쾌하고 상쾌한 강의를 해주신 진성수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 드립니다.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내일로 가는 더 멋진 길을 열심히 닦을 시간. 새 집 청소도 좀 하고 책장 정리도 좀 하고요.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기쁜 말이 담긴 책도 좀 읽어보고요. 부지런을 넘어 바지런하게 살아볼까 하지요. 어제 문우의 출간회를 진행하면서 그 제목이 유심히 들어왔는데요. 아마도 저에게도 매 순간을 ‘다시 시작의 자리에서’라고 주문을 걸어두라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마술의 주문을 걸고 싶군요. 도종환 시인의 <고요>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고요 – 도종환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 한다


고요는 침착한 두 눈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보게 하고

육신야말로 얼마나 가엾은 것인지 알게 한다


고요는 내 안에 오래 녹지 않은 얼음덩이와

그늘진 곳을 보여준다

내가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있는

오래된 상자를 열어 보여 준다

그 안에 감추어둔 비겁하고 창피하고 나약한

수천 페이지의 문장들을 다 읽을 수 없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허약하며 자주

바닥이 드러나는 사람인지


고요는 이미 다 안다


내 안에는 타오르는 불길과

오래 흘러온 강물이 있다


고요는 그 불꽃을 따스하게 바꾸고

수많은 것을 만지고 온 두 손을 씻어준다


촛불 있는 곳으로 가까이 오게 하고

아직도 내 안에

퇴색하지 않고 반짝이는 것과

푸른 이파리처럼

출렁이는 것이 있다고도 일러준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물 한 잔을 건넨다


다시 아침 해가 뜨고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생은 계속된다고 조그맣게 속삭인다

다시 별빛을 바라보고

자신을 용서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들은 신께 판단을 넘기고


고요의 끝에 왜

두 손을 모으게 되는지

물어보게 한다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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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명심보감3.jpg 아주 쉽고 유쾌한 말씀으로 '전정한 행복은 사소함에서부터' 임을 들려주신 진성수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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