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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27

2025.12.1 안규례 <아침산책>

by 박모니카

첫날이지요. 2026 수능응시생 필적확인문구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을 되새겨봅니다.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구나 라는 한숨 대신 숫자 1이 가져다주는 왠지 모를 에너지 팡팡을 기대하고 싶고요. 어제도 학생들의 보충 수업이 있어서 교실을 둘러보던 중, 달력이 보여서 한 장씩 뜯어내면서 마지막 한 장 남은 12월의 날들에게 미리 아부 좀 했지요. 천천히 가달라고, 내 발걸음에 맞추어 달라고, 기다려 달라고...

헌 집에 있던 책들을 새 집으로 이사시키면서 근대 시인들의 이름과 대표시집들을 후루룩 넘겨보기도 했지요. 수업 후 밤늦게까지, ‘온택트 근대시인세상‘에서 만나는 문우들의 글 모음집을 편집하면서 다시 또 근대시인들의 작품들을 후다닥 읽어보기도 했네요. 우리 문우님들이 얼마나 알뜰한지, 시인들의 대표시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시들을 많이 발제했더군요. 공부욕심꾸러기 들입니다.^^


눈도 아프고, 손가락은 더 아프지만, 모음집에 실릴 발제시들을 다시 읽어보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타이핑을 쳤습니다. 공동의 가치를 두고 한 길을 동행하는 일, 나이 들수록 반드시 필수요건인 듯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공유할 수 있는 취미와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을 듯하니까요.


어쩔 수 없이 새해준비 노트에 이런저런 계획을 써보는 가운데, 새해에는 또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육하원칙을 적용하면서 궁리해 보곤 하지요. 새로움이 참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오래됨에 길들여지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 또한 못지않게 좋아서, 몇 가지 옛 항목을 그대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비록 오늘이 새 날이지만, 어제의 잔 물결이 아직도 남아있을 터이니, 너무 서운하게 다 털어놓고 가지 마시고, 살짝 되돌아보아 인사라도 건네주고 새 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비록 신록의 계절은 아니더라도 필적확인문구를 본 김에 지난 봄을 그리워하며 초겨울 바람보다는 명지바람을 맞고 싶어 안규례시인의 <아침산책>을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침산책 – 안규례


나가자, 오동 그린공원으로

비 그친 자리 꽃을 밟고 선 신록이

점령군처럼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바윗등에 앉아 내려다본 산

오월의 햇살 속으로 주체할 수 없는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싱그럽게 번져온다

산허리 지나 위아래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명지바람

삐걱거린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 곁에

나도 따라 걷는다

가까운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는

청설모 노니는 길섶에

솜털 보송하게 핀 노루귀, 괭이눈

작년에 피었다 진 꽃들

한 생이 잠시 계절을 돌아갔다가

그 길목을 따라

다시 돌아왔구나.

빈약한 이끼가 햇살맞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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