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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28

2025.12.2 고형렬 <사라진 서점>

by 박모니카

책을 둘 공간이 좁을땐 좁아서 불편했는데, 조금 넓어지니 넓어진 만큼 책의 수량이 늘어나야 하는 것도 마음에 불편함이 될 수 있구나 싶어요. 어느 서점 사장의 말이 새삼 다가와서요.


’ 누구는 책 판매대에 1억 어치의 책을 놓고도 팔지 못하는 책방인데, 누구는 방 한 칸에 몇 권을 놓고도 책방이라 한다고 ‘ 했다는 말씀.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언짢은 기분이었는데요, 제 입장과 그분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참 맞는 말이구나 싶어서, 오히려 미안해지기까지 했지요. 그분은 서점이 주요 생계수단이고, 저의 모양새는 문화의 호사를 누리는 듯한 마음을 가졌으니... 세상을 역지사지의 태도로 바라본다면 더 미안하고 더 마음을 주고 더 소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조금 넓어진 새 책방의 공간에 책을 채우려고 하다 보니,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들어갈 참인지. 드디어 어제 무거운 맘을 내려놓기로 했지요. 새롭게 시작하려는 맘이 무거울수록 책방운영의 본질이 흐려지고, 무엇보다 제가 즐겁지 않으면 오래 지속할 수 없으니까요.

처음엔 유명 출판사의 시집 시리즈들을 쫘~악, 인문서들을 쫘~악, 최신 에세이들을 또 쫘~악... 등을 생각하며, 별의별 시리즈 비치를 궁리 또 궁리했었는데요. 세로로 세워지는 책들의 양이 얼마나 대단한 장력을 보여주는지 끝도 없이 책이 들어가야 할 참. 그래서 마음을 돌려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의 책 비치로 선회했답니다.


다행히도 10여 명의 벗들이 다양한 사고로 조언과 추천을 아끼지 않고 ’ 공동의 책방‘을 만들어가고 있네요. 매일 쏟아지는 출판 책들의 양, 검색할 때마다 달라지는 베스트셀러들의 자리만 보아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시대의 변화에 기 눌리지 않는 ’ 고전‘명서들이 가장 많이 읽히는가 봅니다.


시집 선별만 해도 그렇습니다. 요즘 시인들의 이름을 거의 모르기도 하거니와, 제가 읽었던 시집들의 시인들께서 언제 새 시집을 내실까에 관심이 더 많아서, 그런 시집이 보이면 내용을 불문하고 무조건 구매명단에 올려놓기도 하고요. 하여튼 책장공간에 들락날락거리고 있습니다. 가끔씩 CCTV로 저를 보면 마치 생쥐 한 마리가 먹이를 쌓아두려고 고양이 방울소리에 귀 쫑긋하며 구멍다리를 종종걸음 하는 모습 같아서 혼자 웃기도 하고요.


오늘내일 그럴듯한 소식이 있네요. ’ 처음처럼‘이란 신영복 선생의 책을 꽂으면서 다시 마음을 다짐했듯이, 우리 모두 첫눈을 보며 마음을 밝게 가져보아요. 고형렬시인의 <사라진 서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라진 서점 - 고형렬


드르륵. 조용히 문을 열고

흰 눈을 털고 들어서면

따뜻한, 서점이었다

신년 카드 옆엔 작은 난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

높은 천장까지 가득

차 있었다 아 추워, 언 손을

비비면 그 12월임을 알았다

멀리 있는 사람이 그리워

좋은 책 한 권 고르다 보면

어디선가 하늘 같은 곳에서

새로운 날이 오는 것 같아

모든 산야가 겨울잠을 자는

외로운 산골의 한낮

마음만 한 서점 한쪽엔

생의 비밀들을 숨긴 책들이

슬픈 책들이, 있었다

다시 드르륵, 문을 열고

단장된 책들이 잘 꽂혀 있는

그 자리에 한참, 서고 싶다

그대에게 소식을 전하고

새로운 마음을 얻으려고

새 눈 오던 12월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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