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 박노해 <그가 다시 돌아오면>
일 년 전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사람이 있을까요. 일 년 동안 내란이란 말을 하루도 듣지 않은 적이 없네요. 미친 자의 이후 45년 만의 계엄선포. 저도 그날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요. 한밤중 침대에 앉아서 계엄선포의 소식을 반복해서 들으며, 국회로 몰려든 사람들과 함께 마음이 요동쳤던 그 시간들.
적어도 제 나이의 사람들이라면 1979년 유신의 종말과 계엄선포하며 등장한 신군부라는 비인간들의 작태를 알고 있는데요. 그 후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민주화의 길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의 희생을 뉴스와 역사적 기록물을 통해서 보고 들으며 동행해 왔지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요.
그런데, 이런 대명천지 같은 세상에서 벌어진 ’ 2024.12.3. 계엄선포‘ 그 후로 또다시 세상을 바꾸자고, 다시는 이런 자들이 설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외침 속에서 일어났던 사람들의 응원봉 물결. 지나버린 역사적 기록물에서 만난 것이 아니고 현실공간에서 마주했던 사람들과 호흡하며 지켜보았기에 더욱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이때쯤이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 있을 거라 믿었는데, 내란수괴와 그 일당들에 대한 판결은 여전히 안갯속이네요. 무엇보다 법과 정의를 공정하게 저울대에 올려놓아야 할 판사라는 인간들의 일부 행태를 보면 정말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기념할 수도 없고 현재진형형으로 남아 돌아가는 이 내란의 바람개비는 언제 그 종말을 보여줄지 모르겠군요.
하여튼 잊으면 안 될 숫자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4.19, 5.18과 함께 12.3은 잊으면 안 될 엄청난 숫자. 국민이 주인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마땅히 기억해야 할 시간입니다. 각종 다양한 진보매체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오늘을 기억하고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미리 예방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라고요. 어젯밤 책방에 들어온 노란 등빛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도 꺼지지 않는, 민주주의를 향한 등불하나 밝혀 놓으시게요. 내란 후 박노해시인의 시 <그가 다시 돌아오면>을 들려드렸는데요. 다시 한번, 아니 내란 종식이 될 때까지 계속 읽어보아야 할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가 다시 돌아오면 - 박노해
그가 다시 돌아오면
계엄의 밤이 도래하겠지
번득이는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
의인들과 시위대가 ‘수거’되겠지
광장과 거리엔 피의 강이 흐르고
사라진 가족과 친구를 찾는
언 비명이 하늘을 뒤덮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살림은 얼어붙고 경제는 파탄나겠지
우린 갈수록 후진국으로 추락하겠지
오가는 사람도 드문 스산한 밤거리엔
총소리 군홧발 소리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계엄군이 내 가방을 뒤지고 신상을 털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남북이 충돌하고 전쟁이 돌아오겠지
자위대가 상륙하고 미군이 연합하고
긴 내전과 숙청의 날들이 이어지겠지
숨어있던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광복 80년 만에 이 땅은 다시 빛을 잃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모든 방송과 언론과 유튜브에선
검열된 이슈와 재미와 조작으로
눈과 귀를 가리며 관심을 돌리겠지
김건희의 국빈 행사와 일상을 띄워대며
패션과 미담의 화제거리로 도배되겠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자유도 민주도 선거도 의회도 삭제되겠지
빛을 들고 나선 이들이 샅샅이 색출되고
단 몇 줄 올린 글로 검은 제복이 찾아오겠지
너 좌빨이지, 불순분자지, 완장을 찬 극우대의
광기 어린 폭력에 숨도 못 쉬겠지
아아 그가 다시 돌아오면,
저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버젓이 권좌에 도사린 채
내란을 지속하고 내전을 불지르는 자들
지금, 빛으로 끌어내 처단하지 않는다면
지금, 뿌리째 뽑아내 청산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