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6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생명체의 몸속에는 이름을 댈 수 없는 많은 길이 있다는 데요. 그중 ‘하품’도 생명을 주는 하나의 길이랍니다. 소위 뇌에 찬 공기를 공급하는 통로로 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하품을 하고 동시에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신다고 하네요. 매일 지나칠정도로 하품을 하는 제 모습이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해서 도대체 왜 하품이 있는 것인지 검색했더니...
수면부족과 스트레스 증가는 뇌의 온도를 증가시켜 준다고 해요. 이럴 때 하품을 하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의 수치가 높아져서 저절로 뇌의 온도가 낮아지고 몸도 맑아진다고 합니다. 요즘 제가 달고 다니는 하품의 원인이 딱 보이는 말이네요.
아무리 멀티워커(multiworker)라 해도 나이와 체력에는 한계가 있긴 한가 봐요. 누군가가 저를 보면 뜻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무언가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제 속내에서는 얼마나 큰 소용돌이가 끊임없이 맴돌았던지요. 올해 하반기 전부를 살 집과 새책방오픈 문제로 머리를 싸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그래서인지, 모양새가 완전하진 않아도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오늘부터 제2의 봄날의 산책이 문을 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마음 써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요. 오늘도 별도의 행사 없이 지인들께 신고하는 맘으로 새 문을 열어 두렵니다. 동절기라 날도 춥고 해서, 어느 하루 따뜻한 햇살이 머물거든, 그래서 봄날의 산책이 생각나거든 차 한잔 드시러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사이 저는 좀 더 알차게 편안하게 책방을 만들어 가면서 가장 중요한 책방의 제 기능에 대해 연구하고 계획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봄날의 산책은 ‘지역작가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제1의 목표로 하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분들의 글 작품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작가들과의 이야기마당을 펼쳐야겠지요. 두 번째는 지역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상생활동입니다. 할 일은 무진장 많으니, 이 또한 찬찬히 펼쳐서 전달하겠습니다. 오늘은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들려드리는데요, 제 책방이 이런 친구 같은 곳이기를 소망하면서...
봄날의 산책 모니카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