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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외선생 홍언니 Apr 15. 2021

올바른 교육자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반성하게 되는 순간.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이 학생이 왜 나를 잘 따라오지 못할까?'였다.

20살 멘토링을 시작해, 7년차에 접어드는 이 시국에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으며 과외 학생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내 수입은 귀여워졌고, 하지만 반대로 더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 것은 맞다. 하지만 항상 드는 의문은 왜 모든 학생들을 처음과 끝이 다른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작년 한 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이 극에 오르고 졸업과 취준 등등이 맞물리기도 하였고, 뭐 아무튼 적을게 많긴 하지만 충분히 고달팠다. 그것들 때문일까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올해 표본을 자세히 들자면 사배자 친구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이 학생이 왜 나를 잘 따라오지 못할까?'였다.


20살 멘토링을 시작해, 7년차에 접어드는 이 시국에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으며 과외 학생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내 수입은 귀여워졌고, 하지만 반대로 더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 것은 맞다. 하지만 항상 드는 의문은 왜 모든 학생들을 처음과 끝이 다른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작년 한 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이 극에 오르고 졸업과 취준 등등이 맞물리기도 하였고, 뭐 아무튼 적을게 많긴 하지만 충분히 고달팠다. 그것들 때문일까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올해 표본을 자세히 들자면 사배자 친구들이 많았던 시점이었다.

농어촌, 수급자 등등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이 학생이 왜 나를 잘 따라오지 못할까?'였다.


20살 멘토링을 시작해, 7년차에 접어드는 이 시국에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으며 과외 학생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내 수입은 귀여워졌고, 하지만 반대로 더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 것은 맞다. 하지만 항상 드는 의문은 왜 모든 학생들을 처음과 끝이 다른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작년 한 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이 극에 오르고 졸업과 취준 등등이 맞물리기도 하였고, 뭐 아무튼 적을게 많긴 하지만 충분히 고달팠다. 그것들 때문일까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올해 표본을 자세히 들자면 사배자 친구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이 학생이 왜 나를 잘 따라오지 못할까?'였다.




20살 멘토링을 시작해, 7년차에 접어드는 이 시국에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으며 과외 학생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내 수입은 귀여워졌고, 하지만 반대로 더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 것은 맞다. 하지만 항상 드는 의문은 왜 모든 학생들을 처음과 끝이 다른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작년 한 해는 유독 힘든 해였다. 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이 극에 오르고 졸업과 취준 등등이 맞물리기도 하였고, 뭐 아무튼 적을게 많긴 하지만 충분히 고달팠다. 그것들 때문일까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올해 표본을 간략히 들자면 사배자 친구들이 많았던 시점이었다.


농어촌, 수급자 등등 많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세 표본이 있다.


한 명은 반수생이었다. 농어촌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참 불쾌한 학생이었다. 과제를 제때 수행하지 않았고, 매번 핑계만 늘어놓는. 즉 떠먹여주길 바라는 학생이었다. 중간에 포기할지말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데려갔고 합격을 시키긴 했다.


하지만 나는 이 학생이 대학에서 불합격하길 바랐다.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면접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합격한 이 학생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가 자기소개서에 쓴 내용도 모르고 면접장에 입장하는 학생이 과연 올바른 지원자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까.

후에 요즘 부업으로 하고 있는 스니커즈 수집을 물어보며 내게 내가 가진 신발을 저렴히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거절하며 성실히 수업을 이수했으면 정가에라도 줬을 거라고 얘기했다. 내 나름의 가장 큰 반항이었지.

수업을 늦고, 빼먹고, 과제도 안하고 미루고, 거기에 내가 꼰대인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게 대하라 하였더니 자신의 잘못에 죄송해요가 아닌 미안해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과연 올바른 행동인지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들었다. 뭐 정말 이런 케이스를 많이 보긴 했지만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실패하더라. 나에게 간혹 연락오던 비슷한 케이스의 학생도 결국 취업전선에서 또 도와달라하지만 어림도 없지.


두 번째로 기억에 많이 남는 학생 역시 반수생이었다. 특목고 학생이고 3년간 컨설팅을 맡겼지만 수시에서 하나도 합격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친구는 원하던 1지망 대학에 합격했다. 한국외대. 자기소개서의 방향과 스킬을 명확히 모르는 어떤 미친놈이 학생을 버려놓은 것이다. 실제로 이런 케이스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이나 야매 강사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정말 수업도 열심히 따라오고 오히려 내가 손을 많이 못써준게 미안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 어머님께서는 다른 학부모들에게 나를 추천하여 지금은 또 다른 학생을 맞이하였다.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학생은 가장 대박이 난 케이스이다. 낮은 내신 4등급대로 인하대를 합격한 케이스인데 이 학생도 참 산전수전 겪었다. 수업은 잘 따라왔으나 합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초반에 학교들이 여럿 떨어지니 막말을 좀 심하게 했다. 내가 그 글을 읽고 이새x를 어떻게 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그날 다른 학교 1단계 합격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우스갯소리지만 학생 아버지가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고 학생의 무례함에 대해 내게 진심으로 사과하셨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학생은 학종에서 총 3곳에 합격했는데 인하대는 추추추가합격으로 붙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뭐 맨날 헛소리하면서 연락하곤 한다.(과외학생좀 데려오라고..)


아무튼 이외에도 참 많은 학생들이 있었으나 요즘 학생들이 점점 나를 '도구'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대감을 기반으로 수업 이후에도 연락을 하며 밥 한 번 사주거나 술 한 잔 사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참 아이러니한 구조가 되어간다. 내가 학생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 내가 수업에서 발언하는 팩트 때리기가 학생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 한다 생각하고 지적하는건데 괜시리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지금 나는, 선생이기도 하고, 연구원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일을 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거기에 다른 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학생부종합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영역이다. 이 영역을 지키며 나는 더 많은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사업을 구상하고 있고, 다행이도 많은 주변 지인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여 협력하기로 하였다. 조만간, 꼭 금방 이 사업이 시작되고 그 후 더 당당하게 누군가를 지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분들은 어떤 선생님을 바라는지, 혹은 이런 학생들을 마주하였을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의견을 나눠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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