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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Sep 17. 2024

너무 일찍 철이 든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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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연 누나와 처음 만난 건 칠 년 전 겨울, 그러니까 그 라디오를 듣던 겨울밤의 한 해 전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크리스마스를 십여 일 앞둔 추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상이 놓였던 방바닥 자리를 젖은 걸레로 닦고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의 반지하 현관문을 누군가 쾅쾅 두드렸다.

 “계세요?”

 젊은 여학생의 목소리였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할머니가 “밖에 누구 왔나 보다. 나가봐라.”고 해서 나는 조금 귀찮은 듯한 티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문을 열자 교복 위로 검은 패딩점퍼를 껴입은, 열여섯 또는 열일곱쯤은 돼 보이는 한 누나가 손에 입김을 불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저녁 늦게 미안. 여기가 박하율 어린이가 사는 집이니?”

 그날 처음 본 다연 누나의 특별할 것 없던 첫인상이 내게 유독 강렬했던 건 일곱 살 무렵 나를 두고 떠난 엄마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었을까. 긴 생머리에 하얗고 동그란 얼굴, 큰 눈에 심지어 검은 뿔테 안경을 두른 것까지. 할머니 몰래 간직하고 있던 젊은 엄마의 학생적 사진과 누나의 모습은 그 분위기가 무척 비슷했다.

 “박하율은 내 동생인데요.”

 “그럼 네가 박정민? 맞게 찾아왔네.”

 다연 누나는 잠시 집에 들어와 할머니와 내게 찾아온 용건을 설명했다. 자신은 도봉구 몰래 산타 청소년 봉사단인데,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취약계층 아동을 방문해 선물을 준다고 했다. 특히 8세 미만 미취학 아동이 있는 경우엔 산타에게 빌 소원과 받고 싶은 선물을 사전조사한다고. 소망편지를 산타가 직접 읽어주고 선물도 주면서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집에서 가장 어린아이, 그러니까 하율이의 소원과 평소 갖고 싶어 했던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하율이는 저녁식사 후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든 상태였다. 다연 누나는 내게도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는지 물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모든 어린이들이 선물 증정 대상이라고도 덧붙였다.

 “받고 싶은 거 없는데요.”

 “그러지 말고 말해봐. 혹시 아니? 산타가 좋은 거 사줄지도.”

 그 말에 나는 처음 보는 다연 누나에게 도전하듯 쏘아붙였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 나는 과한 친절을 베풀려는 모든 어른들에게 그런 태도를 취했지만, 왠지 우리 엄마를 닮은 다연 누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럼 태블릿 선물해 줄 수 있어요? 그건 비싸서 못하죠? 그거 아니면 딴 거 필요 없어요.”

 다연 누나는 무례한 내 태도에 특별히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찾아온 목적 중 하나가 선물 수요에 대한 사전조사니까 메모해 놓겠다면서, 패딩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 얘기를 입력했다. 나는 약간은 꼬인 마음으로 부러 심술 맞게 대답했지만, 막상 진지하게 내 얘기를 경청하는 다연 누나에게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다연 누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시종일관 예의 바른 태도로 할머니에게도 하율이에 관해 이것저것 더 물어본 후 밝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애답지 않게 예의 바르고 싹싹하구먼.”

 할머니가 말했다. 다연 누나는 인사를 마치고 떠나다가 현관문을 닫으려는 나를 향해 한 번 더 돌아섰다. 그러곤 처음에의 그 밝은 미소를 거둔 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뭐지?’ 당연하게도 나는 다연 누나가 왜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고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내 마음은 어땠을까. 기분이 나빠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왠지 반대로 기분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할까.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 찾아왔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부터 나는 할머니 방에 걸린 벽시계를 자꾸 쳐다봤다. 몰래 산타 방문 일정을 미리 전해 들은 할머니는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저녁밥을 다소 이르게 차려 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율이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매년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영화『나 홀로 집에』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늘 하던 대로 밥상을 치우고 하율이가 흘린 음식물 자국을 걸레로 닦았다. 그러면서도 연신 고개를 들어 동그란 벽시계의 검은 시곗바늘을 자꾸 쳐다봤다. 시간은 여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골목 어디선가 사람들이 떼 지어 부르는 캐럴송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빠, 무슨 노랫소리 들려.”

 하율이가 소리쳤다. 캐럴송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다가 우리 집 문 앞에까지 이르렀다. 곧이어 똑똑똑, 하고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율이가 “누구예요?”하면서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문을 열었다. 산타 복장을 한 남자와 다연 누나, 그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비좁은 우리 집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사정을 모르는 하율이는 두 눈이 동그래진 채, 그러나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집에 착한 일 많이 한 어린이 천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산타할아버지가 편지랑 선물을 주러 왔어요.”

 흰 수염을 덕지덕지 붙인, 어색한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 산타가 하율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기뻐하는 하율이를 보면서 할머니도 덧붙였다.

 “하율이는 좋겠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러 오셨단다.”

 “와아.”

 감탄한 하율이가 소리 질렀다. 함께 온 산타 봉사단 모두 그런 하율이의 반응이 귀엽고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속으로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또 일부러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연 누나는 하율이에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내 반응을 곁눈질로 살피고 있었다. 산타는 미리 알고 있던 하율이의 소원이 담긴 소망편지를 낭독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돈 벌러 떠난 엄마아빠가 하루빨리 집으로 오기를 바라는 하율이의 소망이 곧 이뤄질 거라며 격려했다. 그러곤 토끼 인형과 레고 세트를 하율이와 나에게 선물로 줬다.

 나는 산타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졌다. 하율이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난 건 아빠 혼자였다. 나는 진즉에 우릴 떠난 엄마가 이 년 전 아빠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전화 통화를 엿듣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년 전 그때, 밤하늘을 떠가는 비행기 불빛을 골목길에서 홀로 바라보며 나는 참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었는지. 할머니와 하율이가 잠들어 있던 그 늦은 밤,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엉엉 울었다. 모두가 미웠다. 싫었다. 엄마와 아빠도, 그 사실을 감추던 할머니도. 아무것도 모르는 하율이마저 그때는 싫었다. 구름도, 별빛도, 하느님도.

 몰래 산타 봉사단이 비좁은 방에서 할머니, 하율이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 년 전 어른들을 저주하며 눈물을 흘린 그 골목길에 어색하게 홀로 서서 시린 겨울 밤하늘을 바라봤다. 도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리온자리가 밤하늘에 보였다. 별자리의 사다리꼴 안에서 세 개의 별빛이 유독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열한 살 나이임에도 나는 실연을 당한 사내처럼 쓸쓸함을 느꼈다. 알 수 없는 모든 것들이 그리웠다. 어쩌면 집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이런 내게 어서 관심을 가져주기를 속으로 바랐는지도 몰랐다. 그때의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사랑이 고픈, 외롭고 고독한 어린아이였으므로.  

 “왜 혼자 나와 있어?”

 언제 따라 나왔는지 다연 누나가 내 등 뒤에서 말했다. 그때 나는 누나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지만, 엄마를 닮은 예쁜 다연 누나의 목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집이 너무 좁아서 답답하잖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 장래희망이 웹툰 작가라며?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나 봐.”

 다연 누나의 말에 내가 물었다.

 “누가 그래요?”

 “너네 할머니랑 하율이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다연 누나를 쳐다보지 않고 골목길 바닥에 있는 작은 돌들을 발로 차기만 했다. 그때 다연 누나가 내게 중고로 보이는 태블릿PC 한 대를 내밀었다.

 “이거 너 써. 몇 년 쓴 거지만 아직 쓸 만해. 나는 이제 거의 안 쓰니까.”

 “이게 뭐예요?”

 나는 알면서 굳이 다시 물었다.

 “뭐긴 뭐야. 태블릿이지. 너 이걸로 그림 그리려고 했던 거잖아. 내가 쓰던 태블릿 펜도 다음에 가져다줄게. 아주 주는 건 아니야. 빌려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이 누나는 왜 내게 이런 과한 친절을 베푸는 걸까. 내가 불쌍해 보여서? 내가 거지  같아서? 평소의 나였다면 아마 그렇게 생각하며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특별한 선물을 건네는, 그것도 나를 위해 자신이 쓰던 태블릿을 따로 챙겨 온 누나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뒤늦게 다연 누나에게 들은 것이지만, 누나는 어른들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내 모습에서 자신의 그맘때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친해지고 나서는 그런 다연 누나가 참 어른스럽게 보였다. 누나 역시 막 사춘기를 넘어가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고생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은 이들이 종종 그렇듯, 다연 누나 역시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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